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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파] 환상향견문록/미식과 환상향의 역사

3. 바다가 없어도 환상향에서는 스시를 먹는다.

by 판타스웜 2023. 6. 2.

1) 하쿠레이 대결계 이전 환상향의 스시와 사시미

 바깥 세계에서는 일본의 대표 음식하면 역시 스시와 사시미를 떠올린다. (막상 일본 현지에 도착하면 라멘과 카레, 앙미츠 등을 더 즐겨먹지만 말이다.) 하지만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스시인 니기리즈시는 에도 시대에 처음 등장했으며, 스시에 식초가 쓰이기 시작한 때는 1700년대였다. 반면 환상향이 처음 세워졌을 때가 약 500년 전이라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환상향에서 스시와 사시미는 어떻게 만들어지고, 어떻게 먹었을까? 애초에 바다가 없는 환상향에서 스시나 사시미를 즐길 수 있었을까?

 일본에서 스시의 역사가 천년을 넘어가듯이, 환상향이 설립되었을 때에도 당연히 스시가 존재하긴 했다. 하지만 산과 가까이 있는 내륙 지역,, 그것도 나름 은거지에 위치한 환상향에서 스시는 사치재로 여겨졌다. 보통은 어촌 마을에서 환상향까지 생선을 가지고 오는 것이 상당히 어려운 일이니까 사치재로 여겨지는구나 싶겠지만, 당시 환상향에는 바닷물고기가 아닌 붕어, 미꾸라지, 메기 등 민물고기로 ‘나레즈시なれすし’라는 스시를 만들어 먹었다. ‘나레なれ’의 뜻이 ‘삭히다’인데, 먼저 생선을 잘 손질하여 내장을 제거하고 물기와 소금기를 뺀 후, 생선의 입을 통해 소금을 채우고 무거운 돌로 눌러 절이는 작업, ‘시오기리’를 하여 1개월을 기다린다. 이후 ‘시오다시’라는 소금기를 빼는 작업을 한 후, 식은 밥과 생선을 겹겹이 재워 뚜껑을 덮고 무거운 돌로 눌러준다. 이렇게 1년 가량 숙성시킨 후, 발효 후 못 먹는 밥을 버린 삭힌 생선이 바로 ‘나레즈시’이다.

 이 과정만 봐도 알듯이, 당시 ‘나레즈시’는 귀한 밥도 버리고 시간도 오래 걸리는 귀한 음식으로 여겨졌고, 환상향 밖에서는 점점 밥도 같이 먹을 수 있을 정도로 숙성시키는 기간도 줄인 새로운 스시가 등장하고 있었다. 그러나 처음 환상향이 설립되었을 때 인간 마을의 주된 인원 구성이 음양술, 퇴마술 등 각종 주술에 특화된 규모있는 명가들이었기에 의례용으로도 자주 쓰이는 ‘나레즈시’를 고집하였다. 주술사들 외에 인간 마을을 유지하기 위해 들어온 일부 평민들 빼고는 새로운 요리를 창조하는 데에는 딱히 조예가 없었던 것이다. 반면 주요 명가들을 보조하는 평민, 기술인 등은 빠듯하게 주어진 일만 하느라 자발적인 일을 할 수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환상향에서는 생각보다 긴 기간 전통적인 ‘나레즈시’가 주된 스시로 취급되었다.

 그러나, 200년 가량 지나면서 환상향의 인구 수가 급변하는데 이 때문에 ‘나레즈시’는 높은 사람들의 사치품에서 의례용 음식으로 위치가 바뀐다. 이 변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환상향을 설립한 삼현자의 사정을 알아야 한다. 먼저 당시에는 한창 경계 관리자가 환상향의 운영에 대한 기획 및 설계를 하던 시기라 환상향에 어떤 물자를 유입하고 배출할지 아직 제대로 정해지지도 않았다. 반면 나머지 두 현자는 일본의 신들과 요괴들이 지금 당장, 혹은 시기가 되면 환상향으로 와서 자신을 보존하라고 널리 홍보하느라 바쁜 시기였다. 그 뿐만 아니라 서서히 유입되는 신들과 요괴들 간의 교류와 갈등을 관리하는 일까지 겸해야 했다. 이런 상황인지라 나름 같은 인간, 그것도 같은 주술사끼리인 명가들에 대해서는 알아서 잘 지내겠거니, 생각하면서 신경을 쓰지 않았다. 애초에 이들이 고향에서 하던 원래 일 자체가 각 이변 해결, 요괴 퇴치 같은 것도 있지만, 인간계의 질서 유지도 있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삼현자의 예상과 달리 직접적인 이해관계, 세부적인 교리 및 사상의 차이로 인한 갈등 등으로 인해 주술사 명가 간의 사이는 점점 틀어졌고, 결국 두 명가 파벌 간에 큰 내전이 발발하여 주술사 명가 대부분이 멸망하고 말았다. 단, 이에 대한 확증은 없으며, 어디까지나 주된 추측 중 하나일 뿐이긴 하다. 어쨌든 중요한 것은 환상향 설립 후 200년이 지날 때 쯤에는 주술사 명가 층이 멸망하고 환상향의 인간 인구 수가 대폭 감소했다는 것이다. 결국 고심 끝에 삼현자는 바깥 세계에서 (이번에는 이전과 같은 문제를 방지하기 위해 비인기/개인 단위의) 주술사들을 모집하여 인간 인구 수를 다시 회복하고자 하였다. 이 과정에서 관서의 네모난 스시 틀로 만들어서 네모난 형태를 하고 있는 ‘하코즈시’, 관동의 식초와 소금으로 밥과 생선을 간하여 하룻밤 숙성시켜 만드는 ‘하야즈시’ 등, 식초를 활용하여 숙성 기간을 대폭 줄여 길어도 2~3일, 혹은 식초, 소금, 와사비에 의존하여 거진 숙성시키지 않는 스시가 환상향에 자리잡았다. 이런 스시가 이때 본격적으로 자리잡은 이유는 제조법을 아는 외래인이 적지 않게 들어온 것도 있지만, 청나라, 조선, 몽골 등 외국에서 온 외래인들이 ‘나레즈시’보다 새로 유입된 스시에 더 쉽게 적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하쿠레이 대결계가 설치되기 이전에 즉석에서 조립해주는 스시로 유명한 ‘니기리즈시’까지 환상향에 유입되면서 당분간 환상향에서 스시 식문화에는 큰 변화가 발생하지 않았다.


2) 환상향의 해산물 유입 변화, 기술 발전으로 인한 스시 식문화 변동

 대략 하쿠레이 대결계 이전, 외래인 주술사들이 환상향으로 유입될 때 환상향의 경계 운영 방향성이 잡히고 안정화되면서 본격적으로 환상향에서 점점 높아져가는 각종 수요에 대한 자원 공급이 가능해졌다. 이 중 대표적인 자원이 바로 해산물이며, 해산물 요리는 인간들 뿐만 아니라 요괴들 사이에서도 꽤나 수요가 있었기에 주요한 공급 자원 중 하나다.  그나마 당시에는 적당히 일본 가까운 바다에서 해산물을 환상들이하여 직접 배급하거나 해양생물 전용 연못 등에 방생하는 것으로 충분했다. (다른 야생 동물도 해당되는 것인데 이렇게 굳이 비효율적으로 방생하는 이유는 일부 인간은 물론 요괴의 경우 직접 사냥하거나 수렵하는 것을 선호하는 기질이 있기 때문이다.) 애초에 환상향 내부의 해산물에 대한 수요가 높아진다 해도 미역과 같이 생계에 중요한 자원이 아니면 굳이 무리해서 충족시켜주지 않아도 큰 불만이 생기지도 않기에 필요 공급량 충당에 소홀해도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오히려 하쿠레이 대결계 이후, 일본 산업화 후 바다 오염 문제가 서서히 실체화되면서 어디서 해산물을 공급해오냐가 더욱 중요한 문제가 되었다. 산업화로 인한 오염에 면역이 없는 데다가 의료 기술이 발전하지 못한 상황에서 오염된 해산물을 들이는 것은 인간 마을에 예상 못하는 큰 위협이 될 수도 있다. (물론 영원정의 의술이나 갓파들의 기술력(영원정의 의술과 달리 별도 연구는 해야 한다.)에 의존하는 것도 방법이지만 가능하면 환상향 관리측의 권위 유지를 위해 피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래서 일본에서 공장이 돌아간다는 첫 소식을 접한 후 잠시 공장 위치를 파악하기 위해 단기적으로 해산물 환상들이가 중단된 적도 있었다. 이 때, 비록 잠시였지만 생선을 활용하지 않고 유부, 계란, 육류, 채소 등을 활용하는 각종 스시가 인기를 끌었다. 당시 상황을 보여주는 공문은 아래와 같다.

 “인간 마을의 모든 사람들에게 전한다. 최근 우리 야쿠모가에서 직접 공급하던 해산물의 양이 점점 줄고 있는데, 이는 최근 바깥 세계의 물에 더러운 온갖 것들이 버려졌고, 이에 따라 해산물들도 오염되는 경우가 많아서 이를 제외하느라 공급량이 줄고 있다. 또한, 나름 선별한 해산물 역시 약간의 오염물질이 남아있을 수 있으니, 필히 사시미와 스시로 먹지 말고 잘 익혀 먹도록 하라. 결계를 넘어온 자연산 해산물 역시 상대적으로 안전하지만 날 것으로 먹지는 마라.”
- 당시 해산물 공급 상황에 대한 정보 공유 및 경고를 통보하는 공문 -

 한편, 이때 쯤에 바깥 세계에서 냉장고가 발전하면서 이를 모방한 갓파 냉장고 역시 등장하기 시작했다. 갓파 냉장고에 앞서 이전 이야기를 먼저 하자면, 오래 전 과거부터 일부 주술사는 온도 조절 주술을 활용하여 간단한 체온 조절, 사물의 냉장 보존, 여름이 아닐 때에 한하여 얼음 보존을 하기도 했다. 물론 원래대로면 사소한 규모여도 자연을 거스르는 주술이기에 남용이 금기시되었지만 워낙 유용한 주술이었기에 암묵적으로 사용했었다. 그런데 이런 온도 조절 주술은 효과에 비해 주술사의 체력을 생각보다 많이 소모하고, 무엇보다 16세기 초에 초석과 얼음을 활용하여 빙점 이하를 유지하면서 얼음을 유지하고 만드는 기술이 등장하는 등, 과학이 발달함에 위급하거나 특별히 주술이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잘 사용하지 않게 되었다. 그런데 이러한 인식이 환상향에서는 특히 마법사들까지 합류한 이후 점점 약해졌다. 세계 각지에서 온 인간 마을의 주술사들은 마을 창고에 칸을 하나 더 만들어서 냉장 주술(말 그대로 냉장 주술은 아니고 주로 온도를 낮추고 선선하게 만들어주는 주술 전체를 말하는 것이다.)을 부여하여 첫 냉장 창고를 만들었다. 이를 본 환상향의 스시 요리사들(전문 스시명인은 아니고 흔한 농부나 공인 중 스시를 만들 줄 아는 사람들이다.)은 사시미 전용 냉장 창고를 만들자고 제안했으며, 이는 20세기 전까지 계속 사용되었다.

 냉장고에 대한 수요는 인간 마을 쪽이 아닌 텐구 사회에서 시작되었는데, 당시 전운에 대비하여 소수의 카라스 텐구들이 경계 관리자와 협력하여 바깥 세계의 군대 등을 정찰하고 있을 때, 처음으로 기계로 된 냉동 창고를 접했다. 뭐든지 얼려서 보관할 수 있는 이 냉동 창고를 목격한 텐구들은 위에 보고를 했고, 대텐구들은 이런 보존 기술이 유용하리라 판단하고 협력 관계인 갓파들과 연구를 시작했다. 갓파들의 높은 기술력으로 같은 기능을 가진 기계를 만드는 것은 금방 성공했지만, 문제는 소형화가 잘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갓파들의 첫 냉동 창고는 어지간한 환상향의 대형 건물과 맞먹었다고 전해지며, 아무리 공공 시설로 사용한다 쳐도 너무 규모가 컸다. 이후 어떻게든 최소화는 성공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깥 세계에서 만든 것처럼 개인가구 사이즈로 만들지는 못했다. 이는 기술 발전 방향성의 차이도 있지만 텐구 사회든 인간 마을이든 환상향의 대부분의 공동체가 공동 창고를 활발하게 사용하였기에 굳이 더 시간과 비용을 들여 개인가구 사이즈로 만들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아무튼, 이 냉동 창고와 더불어 사사미 등을 숙성시킬 수 있는 전용 냉장고 역시 개발되어 20세기 중반에 인간 마을에도 배치되었다.


3) 스시 명인 모토나리 하루토의 등장

 환상향에서 스시는 앞서 말한 대로 다양한 모습으로 대중화, 보편화되었지만 바깥 세계에서와 달리 고급화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바깥 세계에서는 20세기 중반에 국가가 간섭하여 문화 마케팅을 하기 위해 일식의 고급화를 추진했다. 이 과정에서 바깥 세계의 스시는 디테일에 따라 질의 차이가 심한 니기리즈시를 중심으로 명품화되었으며 이런 명품 스시를 만들 수 있는 스시 명인이 등장했다. 이와 달리 이런 간섭과 동기도 전혀 없는 환상향에서는 스시는 명품화되지 않았고 생선만 손질할 수 있으면 누구나 만들 수 있는 평범한 일식으로 취급되었다. 니기리즈시를 만들 때도 밥과 생선의 비율은 어떻게 되어야 하는지 등 고급화에 대한 연구는 없었으며, 차라리 각종 요괴와 인간이 좋아할 만한 재료의 다양화가 더 중요한 관심사였다. 이런 점 때문에 환상향에서는 비율에 따라 맛의 격차가 심한 니기리즈시보다는 20세기 중후반에 들어와 다양한 재료를 다룰 수 있는 캘리포니아 롤, 공산 식당에서 틀에 맞춰 양산하여 모두에게 배급할 수 있는 하코즈시 등이 더 인기가 있었다.

 2008년 어느 날, 한 사람이 환상향에 환상들이하면서 스시의 문화는 역변했다. 그의 이름은 바로 모토나리 하루토, 스시 명인이었다. 바깥 세계에서 인기 스타 정도는 아니지만 나름 도쿄에서 약간의 명성이 있다는 스시 명인 하루토는 본래 실수로 경계를 넘어 들어왔는지라 다시 바깥 세계로 방출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고급화된 스시에 관심을 가진 텐구 사회의 지도자 텐마는 카미시라사와 케이네, 히에다노 아큐, 야쿠모 일가 등 환상향의 유력자들을 설득하여 스시 명인을 환상향에 남겨 환상향에서 고급화한 스시를 제공하도록 했다. 처음에는 그저 바깥 세계에 나가려고 했던 하루토는 이 제안을 듣자 이를 받아들이는 대신, 자신을 히에다 가문처럼 명가로 만들어달라고 요구했다. 히에다노 아큐 등 인간 마을의 거주민들은 히에다 가문처럼 환상향에 필수적인 능력을 가진 경우가 아닌 이상, 명가라 해도 그저 유서 깊은 능력을 가진 VIP 정도의 대우만 해주고 별도로 특권이 없었기에 이를 받아들였다.

 이렇게 순식간에 모토나리 명가의 하루토가 된 그는 인간 마을 토착민들에게 상당히 뻔뻔한 사람이라는 인상을 남겼으나, 그가 사교 능력이 부족한 사람은 절대 아니었다. 그는 직접 말한 대로 ‘명가의 이름에 걸맞게’ 인간 마을 차원의 연회가 있을 때마다 원재료만 별도로 제공받는 대신 무상으로 명품 스시 요리를 제공했으며, 스시 요리를 하는 모든 요리사에게 자신이 연구한 스시 요리법을 아무 댓가 없이 공유했다. 이렇게 인간 마을에서 긍정적인 이미지를 쌓은 명인 하루토는 마을에서 재능이 있어보이는 젊은 사람들을 뽑아 제자로 삼았으며 무상으로 자신의 기술을 전수해주었다. 그리고 이들은 스승과 제자 모두 합쳐 고작 5명이지만 인간 마을은 물론 텐구 사회, 홍마관, 옛 도시 등 보통 인간이 가기 위험해보이는 곳까지 출장을 가면서 명품 스시를 접대하고 영향력을 키워갔다. 이쯤되면 알 수 있듯이, 모토나리 하루토는 명예욕이 매우 강한 사람인 것이다.

 이런 그가 명가라는 우월의식에 빠져 큰 잘못을 저지른 적이 있는데, 바로 히에다노 아큐의 생일 연회에서 ‘샤인머스켓 스시’를 내놓은 사건이다. 이 행동은 여러모로 이야기가 많았는데, 많은 사람들이 명인 하루토가 일부러 히에다노 아큐를 무시하는 행동을 저질렀다는 관점이 주류이다. 스시 명인이나 되는 사람이 일본 문화가 기본인 환상향에서 서구권에서나 등장할 법한 과일 스시를 내놓았다는 것은 고의적으로 손님이 비선호할 만한 음식을 내놓았다고 볼 수 밖에 없다. 하지만 무엇보다 크게 문제가 되는 것은, 과거 인간 마을 연회에서 외곽 농장 지구의 서구권 외래인들을 위해 서구권에서 인기 있던 딸기 스시를 내놓은 적이 있는데, 이때 분명 히에다노 아큐가 비선호하는 의견을 스시 명인에게 표출했었다는 것이다. 즉, 많은 사람들, 명인 하루토를 변호하는 사람들이 봐도 ‘모토나리 명가’의 하루토가 인간 마을에서 자신이 지닌 영향력을 확인하기 위해 히에다 가문의 아큐에게 기행을 펼쳤다고 여겨진다. 실제로 막상 그 기행이 펼쳐졌을 때 연회에 초대받은 마을 사람들 중에서 경악하고 비난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저 웃고 넘어가려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히에다노 아큐는 이 만행에 대해 당황하고 인간 마을에서는 이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온갖 의견이 오갔지만, 이런 동요와 상관 없이 환상향을 관리하는 야쿠모 일가, 그 중 야쿠모 란은 이를 환상향의 전통과 질서를 해치는 심각한 도발이라 여기고 빠르게 조치를 취했다. (이건 그만큼 히에다 가문의 환상향에서 지니는 역할이 보통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는 생일 다음날 새벽, 환상향의 질서를 중시하는 퇴마사 둘과 함께 모토나리 명가에 침입하여 하루토를 납치하고, 옷을 벗기고 누더기를 입혔다. 그리고 아침 해가 뜰 때 마을 사람들을 길가에 세운 후, 하루토에게 밧줄과 칼(계구)을 채운 후 해가 질 때까지 끌고다녔다. 칼에는 “저는 환상향의 전통과 질서를 어지럽히는 죄를 지었습니다.”라는 문구가 써져 있었다. 아래는 당시 상황을 목격한 노인과의 인터뷰다.

 “그 때는 진짜 마을 분위기가 살벌했단다. 이 할범이 태어나기도 전이지만 아주 옛날에는 그렇게 칼을 채워서 마을을 돌아다니게 했으면 다들 죄인이라면서 비웃고 쓰레기를 던지고는 했지. 그리고는 우리 아버지대가 환상들이하면서 그런 처벌 방식은 사라지고 가능하면 마을 사람들끼리는 감옥에 집어넣거나 엄하게 처벌하지는 않는 쪽으로 사회 분위기를 바꿨어. 심한 처벌도 그냥 마을에서 추방하는 것이었지. 물론, 진짜 심각한 죄를 지었으면 이렇게 마을에서 추방하면 아직도 식인을 하는 몇몇 요괴들이 밤몰래 그 인간을 ‘공짜 고기’라면서 사냥하는 게 보통이지만 말이야.
 아무튼, 그런 처벌 방식이 되돌아왔는데 아무도 함부로 하루토 명인을 비웃거나 할 수 없었어. 더 이상 익숙하지 않은 처벌 방식이라 쳐도 관리인 양반의 눈치를 본다면 어떻게든 그렇게 비웃거나 할 수 있겠지. 하지만 그런 문제가 아니었어. 진짜 이유는 다른 거지. 첫번째, 하루토 명인은 그저 단순한 명가가 아니라 실제로 인간 마을은 물론 환상향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가진 인물이었어. 이 처벌이 끝나고 무슨 일이 있을 줄 알고 어떻게 그를 함부로 대하겠어? 그리고 둘째, 이건 감 좋은 사람들이나 좀 느낀 거겠지만, 그 때 그 명인의 은은하게 미소짓는 표정에서 드러나는 살기였어. 자기 딴에는 숨겼는데도 그런 살기가 드러난 건지, 아니면 일부러 그리 조절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누구든 그런 살기를 내뿜을 수 있는 사람이 그때 받은 치욕을 그대로 넘어가리라 생각이 들지 않을 거야. 하여간에… 그 사람은 보통내기가 아니야.”
- 명인 하루토의 칼 처벌식을 목격했던 노인과의 인터뷰 -

 이 (하루토 입장에서는) 치욕적인 일 이후로 명인 하루토는 다소 딱딱하더라도 히에다노 아큐에게 제대로 격식을 차렸고,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평화롭게 해소되었다. 다만 두 명가 간의 관계와 별개로 야쿠모 란의 단독적인 처벌식에 대해 인간 마을 총회의에서 문제 삼는 이야기가 많이 나왔다. 문제 제기 중 하나는 야쿠모 란의 해결 방식이 되려 인간 마을 내 갈등을 더 심화한 형태로 방치했을 뿐이라는 것인데, 실제로 표면적으로 해소된 것과 별개로, 짧은 기간동안 히에다 가문은 독살을 우려하는 것인지 아큐가 모토나리 명가 요리를 먹기 전에 독에 내성이 있는 하인이 미리 맛보기까지 했다.

 야쿠모 란과 명인 하루토 간의 관계 역시 확실히 부정적으로 변했을 것이라 추정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시 명인과 야쿠모 일가 전체와의 관계는 예상과 달리 계속 긍정적으로 유지되었다. 이는 스시 명인으로서 어쩔 수 없는 것도 있는데, 명품 스시를 만들기 위해서는 야쿠모 일가의 고품질 생선 환상들이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단순히 환상들이를 통해 참치나 연어, 광어 등 주된 스시용 생선을 얻는 것 외에도 바깥 세계에서 구하기 힘든 생선으로 스시를 만들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대표적인 예로는 아래와 같다.

1. 점점 희귀해져가는 뱅어 스시
2. 각종 ~돔(뿔돔, 꼬리돔, 금눈돔 등) 스시
3. 물레고둥 스시
4. 홋카이도의 3대 고급 어종 중 하나인 홍살치 스시
5. 남극 대륙 해역 심해에 서식하는 비막치어 스시
6. 깊은 심해에 서식하는 초롱아귀 스시
7. 위험한 고난이도 식재료 복어 스시

 이런 희귀한 생선을 토대로 한 명품 스시는 텐구 사회에서는 엄청난 가치를 자랑했으며, 다른 곳에서도 인기가 많았다. 그래서 비록 스시 명인 하루토는 ‘큰 잘못’을 저질렀어도 환상향은 물론 인간 마을에서도 인기 있는 요리 명가라는 영향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 단순히 명품 스시 외에도 환상향 내 전반적인 스시의 품질을 올리고 새로운 레시피도 개발하고 공유하는 그였기에 명가라는 권위를 떼어낼 수 없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막상 그가 트롤링을 하기 위해 만든 샤인머스켓 스시마저도 전용 샤리를 쓰는 등 생각보다 정성들여 개발했기에 서구권 외래인 출신이 많은 외곽 농장지구나 비슷하게 서구권 문화를 향유하는 홍마관에서는 인기가 좋다.) 그가 앞으로 어떤 행동을 하여 사후에 어떻게 평가를 받든, 스시 명인 모토나리 하루토는 환상향에서 스시의 첫 명인으로 기록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