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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파] 외래신요금화/동방당혹극계

1. 달콤한 마술사의 방문

by 판타스웜 2024. 4. 13.

 “하아, 귀찮다.”

 낮은 탁자 위에 각종 책과 종이가 어지러져 있다. 어떤 책은 세상에서 가장 오래 된 듯한 동양의 고서인 것 같으면, 어떤 책은 이제 갓 내용을 채워가는 바깥 세계의 공책 같았다. 기다란 금발을 포니테일로 묶은 야쿠모 가의 당주, 유카리는 낮은 탁자 앞에 앉아 있었다. 대신 틈새를 활용하여 탁자 앞 빈 공간에 의자를 만들어서 등을 기대고 있었다. 유카리는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다 다시 자세를 바로잡고 공책에 계산식을 써가며 메모하고, 정리된 내용을 깔끔하게 빈 종이에 작성하였다.

 “분명 인요 관련 행정 업무는 란한테 다 떠넘겼는데도 왜 이렇게 할 일이 많다냐. 오키나 녀석은 말만 도와준다 해놓고 또 어디 싸돌아다니는 거야……. 잠깐만, 카카오 열매가 벌써 떨어졌다고? 원래대로면 아직 두달치는 더 갈텐데.”
 “....... 아, 맞다. 텐구 녀석들 갓파들이랑 새로운 카카오 열매 가공기를 테스트하다가 날려먹었다고 했었지? 좀 더 빨리 사러 가야겠네. 수확기가 아니어도 팔긴 하려나.”

 유카리는 자리에서 일어나 입고 있던 프릴 잠옷을 벗고 옷장 안에서 빅토리아풍의 드레스를 꺼내 입었다. 유카리는 커다란 틈새를 열어 바깥 세계로 걸음을 옮겼고, 그 곳은 바로 아프리카의 가나였다. 어두운 밤 하늘, 항구에는 세계로 여러 재화를 옮길 컨테이너가 잠들어 있고 이를 지키는 일꾼들은 술잔을 기울이면서 휴대폰 영상을 보면서 쉬고 있었다. 카카오 열매가 그려진 컨테이너 앞에 있던 일꾼들은 어둠에서 드러나는 유카리를 보고 놀라면서 영어로 떠들기 시작했다..

 “으아악! 귀신이다! 혀, 형님, 어떻게 하죠?”
 “으윽, 아마 사장님이 말씀하신 그 귀신일 거다! 일단 사장님을 불러와!”

 젊은 일꾼이 컨테이너 틈 어둠으로 사라진 사이, 늙은 일꾼은 말을 더듬으면서 유카리에게 말했다.

 “왜, 왜 벌써 왔습니까? 다음 거래까지 아직 두달 남았을텐데요?”
 “후후, 사정이 있어서 조금 일찍 왔습니다. 이번에 온 건 정기 거래 때문은 아니고, 어쩌다보니 물자를 빨리 소진해버려서 약간만 더 구매하러 왔습니다.”
 “아, 더 구매하러 오셨군요. 아, 근데……. 음…….”
 “뭔가 문제되는 거라도 있나요?”
 “그게……. 아 저기 사장님께서 오십니다!”

 한 사람이 아까 사라진 젊은 일꾼과 함께 컨테이너 사이 어둠 속에서 드러났다. 그 사람은 사장이라 하기엔 무척이나 투박한 옷을 입고 있지만 그래도 나름 노동자보다는 사장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사장은 당혹스러운 일을 겪은 것처럼 달려왔고, 유카리를 보자마자 다른 두 사람과 다르게 귀신 대신 귀한 손님을 봤다는 듯이 미소지었다.

 “어이쿠, 마담 그린우드님. 이 늦은 시간에 무슨 일일까요?”
 “안녕하세요, 사장님. 다름이 아니라 부득이하게 물자를 빨리 소진해버려서 조금만 더 추가구매하고자 합니다.”
 “아, 그렇군요. 그래요……. 죄송하지만 보통 저희가 어느 정도 재고를 남겨두는데, 일주일 전 어떤 마술사 같은 신사 분이 그 카카오 열매를 비싼 값에 다 사가버려서요. 아, 그 분 명함이라도 드릴까요?”
 “위브르 썬더클랩(Wivre Thunderclap)? 마술사 같은 신사라고요? 이름이 뭔가……. 혹시 저랑 비교하면 어떤 느낌이었나요?”
 “상당히 어려우면서도 쉬운 질문이군요. 뭐라 형용하기 어려운 사람이었지만, 확실히 마담과 비슷한 느낌이 났습니다. 인상 착의에 대해 말하자면 보라빛 모자와 갈색 외투, 황금색 장식-”
 “아, 인상 착의는 딱히 알지 않아도 될 것 같아요. 아무튼 감사합니다.”
 “네, 재고가 부족해서 이렇게 귀한 발걸음을 헛되게 해서 송구스럽습니다. 아, 아직 수확일은 멀었지만 혹여 소매시장 쪽에서 여분 카카오 열매가 발생하면 확보해둘까요?”
 “그러면 감사합니다. 비용은 이 정도면 충분할까요?”
 “아, 네! 그 정도면 충분합니다. 매번 감사합니다!”

 이 곳에서 마담 그린우드라 불리는 유카리는 사장에게 작은 금괴를 하나 넘기고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젊은 일꾼은 유카리가 자취를 숨긴 어두운 곳으로 가보니 진짜 아무 것도 없는 것을 보고 당황했다.

 “아무것도 없어! 진, 진짜 귀신인가 봐요!”
 “그래, 진짜 귀신이지. 그리고 무엇보다 귀빈이지. 이렇게 물가가 날뛰는 시대에 꼬박꼬박 금괴로 구매를 해주는 VIP. 일개 카카오 열매 농부였던 우리 아버지께서 저 귀신을 만난 후 꼬박꼬박 금괴를 모아서 기반으로 삼고 끝내 국제 대기업이 독점하던 카카오 열매 유통권을 상대적으로 소량이지만 결국 홀로 서 있을 정도로 따냈지. 앞으로도 저 분을 보게 되면 이번처럼 허둥대지 말고 잘 응대해드려라.”

 유카리는 다시 틈새를 통해 환상향에 있는 자신의 책상 앞으로 돌아왔다. 그녀는 나름 ‘인간 사업가’스럽게 위장한다고 입은 빅토리안 드레스를 다시 옷장에 집어넣고, 전에 입었던 프릴 잠옷 대신 환상향에서 보통 입던 보라색 드레스를 입었다. 그녀는 다시 틈새로 의자를 만들어 앉은 후 투덜거렸다.

 “후, 역시 이제와서 저런 드레스 입고 나타나면 19세기 귀신처럼 보이나보네. 그렇다고 정작 ‘현장도 방문하는 현대 무역 비즈니스 우먼’이라 할 때 뭘 입고 나타나야 할지 감이 안 오는 걸. 카나코라고 그런 걸 잘 알 것 같진 않고……. 우사미 스미레코라는 녀석의 어머니가 직장인이라면 뭘 입는지 물어볼까나.”

 그녀는 명함을 자세히 보았는데 명함 속 그림이 짧은 반복 애니메이션 마냥 움직이고 있었다. 명함 속에 있는 사람은 우윳빛처럼 하얗지만 그렇다고 창백하거나 분홍빛도 아니었고, 화려한 보라빛 모자를 쓰고 있었지만 갈색 외투는 정갈할 뿐 전혀 사치스럽지 않았고, 곳곳에 은은한 황금빛 장식이 달려 있었지만 너무 과하지 않아 그의 아름다운 적갈색 머리카락과 비취색 눈빛보다 돋보이지도 않았다. 뒷면에는 특이하게도 ‘소환법’이 적혀 있었다.

 “이게 그 카카오 열매를 싹쓸이한 녀석을 호출하는 주문 같은 거겠지? 어디보자, 뒤꿈치를 세번 부딪히고 ‘카카오레, 카카오레, 이 세상의 은총에, 쇼콜라티, 쇼콜라티, 우리들의 사랑을 담아, 마법과 환상의 달콤한 쇼콜란드로!’ ……. 쇼콜란드라니 참…….”
 “하하, 역시 급조한 티가 나는군요.”
 “그래, 마치……. 누구냐?!”

 유카리는 대충 소환법을 따라했는데도 갑자기 등장한 명함 속 남자를 향해 경계하는 자세를 취했다. 나름 환상향의 결계를 관리하는 입장에서 외부인이 이렇게 갑작스레 몰래 등장한다는 것은 극히 드문 일이다. 이런 일이 가능한 자라면 당장 유카리 머리 속에서는 오키나나 용신 정도 밖에 없다. 자신을 적대시하는 유카리를 본 남자는 손에 들고 있던 지팡이를 벽에 기대놓고 가볍게 양손을 들었다. 자세히 그 남자를 보아하니 남자보다는 곧 성인이 될 법한 소년에 가까웠고, 어지간한 소녀보다도 아름다웠다.

 “아, 잠깐만요. 갑자기 나타나서 놀란 것 같긴 한데, 적이 아닙니다. 저를 제대로 소개하자면, 전 세계에 마법의 초콜렛을 유통하던 초콜렛의 마술사이자 공장 ‘쇼콜란드’의 주인, 위브르 썬더클랩입니다.”
 “위브르 썬더클랩? 딱 들어봐도 가명 같은데. 인간은 아닌 것 같은데 요괴냐? 아니면 신인가?”
 “글쎄요……. 그럼 마술사니까 일단 마법사라 하고, 마법사니까 일단 마족이라 할까요?”

 자칭 마법사는 들고 있던 손을 내리고 한 손으로 지팡이를 휘두르며 묘기를 부리더니, 뒷짐을 지고 있던 다른 손에서 머그컵을 꺼내 초콜릿 밀크로 변하는 지팡이를 머그컵에 담아 유카리에게 권했다. 유카리는 머그컵을 냉담하게 탁상에 내려놓고 말을 이었다.

 “흥, 어처구니 없는 소리를 하는구나. 딱 봐도 마족은 아닌 건 알겠는걸? 뭐, 좋아. 소환에 응했으니 소환하게 된 이유부터 말하마. 네가 홀로 싹쓸이한 그 카카오 열매, 비싸게라도 살 생각이 있으니 나눌 생각이 있느냐?”
 “초콜렛이 아니라 카카오 열매요? 하지만 전 초콜렛의 마법사인걸요?”
 “카카오 열매를 가공하는 건 우리도 가능하니까 보관하기 쉬운 카카오 열매가 낫지.”
 “그럼 좀 곤란하네요. 전부 다 초콜렛으로 만들어버렸으니까요.”

 유카리는 기대 밖의 답변에 인상을 쓰기 시작했다.

 “뭐라고? 그걸 어찌 다 보관하지? ……. 아, 맞아. 딱히 환상향 안에 사는 것도 아니니 바깥 세계의 냉동고를 크게 마련하면 별 상관 없겠군.”
 “흠, 이 환상향이라는 곳에는 냉장고가 없나요?”
 “마력으로 작동하는 냉동기기는 있어도 바깥 세계의 냉동실처럼 크게 마련은 못하지.”
 “그러면 제 공장에 오셔서 초콜릿 압축기랑 보관 장치를 좀 챙겨가실래요?”
 “압축기? 우리도 그런 것들이야 마력을 동력으로 만들 수는 있는데 그렇게 만든 후 보관실을 추가로 할당하는 게 애매할 뿐이란다.”
 “과연 그럴까요? 이건 초콜릿을 특별히 관리하는 것이라 더 효율적이고 유용할 거예요. 한번쯤 제 공장에 견학오시는 거 어떤가요? 오시는 김에 초콜릿도 넉넉하게 드리겠습니다. 오래 보관하기 쉬운 형태로 말이죠.”
 “흠……. 잠시만 기다려보려무나.”

 유카리는 잠시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정체불명의 남자와 가는 환상의 마법 공장 따위 너무나도 귀찮은 일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환상향에 초콜릿을 공급하는 일은 중요한 일이었다. 문제는 비록 저 순진한 소년인 척 하는 존재는 최대한 티를 안 내고 있지만 유카리는 너무나도 쉽게 그 존재의 강력함을 눈치챌 수 있었다. 애초에 환상향에 자신 몰래 슥 들어온다는 것 자체가 그 힘을 증명한다. 혼자서 간다면 자신에게 무슨 일이 생길지 알 수 없는 노릇……. 만약 자신이 환상향에서 장기간 자리를 비우면 환상향 내의 재화 유통은 망가질 것이고 내전이 발생할 수도 있을 것이다. 유카리는 잠시 고민하더니 다시 공장주에게 물었다.

 “공장을 견학가는 건 좋은데, 나 홀로 가 봤자 세부적인 기술을 모두 이해하지는 못할 터, 같이 견학 갈 기술자와 조수를 데려가도 되겠는가?”
 “기술자와 조수……. 네, 괜찮습니다.”
 ‘저 녀석, 순간 표정이 꽤나 날카롭게 일그러진 것 같은데…….’

 다음날, 하쿠레이 신사 앞에는 유카리와 몇몇 요괴, 그리고 현인신 하나가 서 있었다.

 “후후후, 마법의 초콜릿 공장 견학이라니, 두근거리지 않아?”
 “맞아, 맞아. 지구 최상의 초콜릿을 먹을 수 있다니, 너무 기대 돼. 헤헤, 인간이라서 못 가는 가짜 마법사양, 샘 나지?”
 “샘 나는 건가-. 루미아는 초콜릿 와장창 먹고 올 건데 샘 나는 건가-.”

 갓파 공학자 카와시로 니토리는 견학에 쓸 도구들을 가방 안에 쑤셔넣고 있는 사이, 질투심이 가득한 하시히메 미즈하시 파르시, 먹보 루미아는 옆에서 레이무와 함게 구경하는 마리사를 놀렸다.

 “으윽, 나도 가고 싶었는데 저것들이 녀석 약올리기는! 레이무도 마법의 공장이 어떤 곳인지 한번 구경하고 싶지 않아? 온갖 마법과 보물이 가득할 텐데!”
 “아니, 초콜릿 공장인데 보물이 왜 나와. 그리고 나는 초콜릿보다는 단팥과 양갱파라서 딱히…….”
 “레이무씨! 마리사씨! 맛있는 초콜릿 잘 챙겨올테니 너무 안타까워하지 마세요!”

 카제하후리 코치야 사나에는 안타까워하는 마리사를 위로하고 있었다. 이 와중에 카라스텐구 히메카이도 하타테는 불평스런 얼굴로 유카리에게 무언가를 따지고 있었다.

 “진짜로 꼭 제가 그 멀리까지 가야 하나요? 아무리 텐구 대표라지만 다른 카라스텐구도 있잖아요? 아야라든가…….”
 ‘현인신에 아야까지 데리고 가면 무조건 그 마술사가 경계할 거니까 못 데려간다…고는 말 못하지.’
 “바깥 세계의 문물, 그것도 바깥 세계의 인외가 만들어낸 문물을 연구하고 조사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그래서 제멋대로인 샤메이마루 아야보다는 신뢰성 있는 하타테님에게 부탁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초콜릿 좋아하시잖아요?”
 “그, 그건 그렇지. 진짜 지구 최상의 초콜릿을 먹을 수 있는 거지?”
 “물론입니다, 미스! 지구 최상은 물론 우주 최상까지도 잘하면 보장할 수 있을 겁니다! 하하하! 유카리님과 5분의 손님들, 이렇게 다 모인 것 맞죠? 슬슬 출발하려고 하는데.”
 “아, 네. 맞습니다. 출발하시죠.”

 두 요괴의 대화 사이에 마술사는 끼어들어서 출발을 알렸다. 마술사는 춤을 추더니 경쾌한 음악이 나오기 시작했고, 이윽고 춤이 끝나자, 그의 등 뒷편에 차원을 가르는 듯한 황금 문이 열렸다. 문 건너편에는 커다란 섬이 있었는데, 주변에는 야자수와 아쿠아마린 색의 바다가 가득하며 가운데에는 황금이 아니지만 황금빛이 감도는 놀이공원 같은 ‘공장’이 있었다.

 “어서 오십시오, 마법의 초콜릿 공장, ‘쇼콜란드’에!”

 유카리와 5명의 견학자는 마술사와 함께 황금 문을 지나 미지의 ‘쇼콜란드’로 떠났다. 이때까지 시큰둥한 레이무는 막상 황금 문을 보자 알 수 없는 불안감을 느꼈고 식은땀을 흘렸다. 그래도 일단 유카리가 직접 결정한 것이니 그녀를 말리지 않고 그저 황금 문이 사라지는 것을 보았지만, 아무래도 불안감이 가시질 않았다.

 ‘유카리, 뭘 하는지 알고 있는 거겠지? 저런 힘은……. 아무나 갖고 있는 게 아니잖아.’
 “....... 레이무, 왜 그래?”
 “응? 아, 아무 것도 아니야. 별 일 없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