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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파] 환상향견문록/환상향에서 살아남기

9. 환상향에서 즐기는 의복 문화와 거주 문화

by 판타스웜 2022. 12. 3.

 보통 환상향은 지리적으로 일본에 있기에 일본식 복장이 통용된다고 생각하며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이다. 하지만 막상 환상향의 요괴 뿐만 아니라 토착민들의 복장을 보면 근세 서양식도 많고 일본식과 뒤섞인 경우도 많다. 이는 지속된 외래인의 유입보다는 에도 시대의 남방인의 정착으로 인한 것이다. 즉, 에도 말기까지 이어져 온 일본식 전통 복장에 빅토리아풍 등 근세 유럽 및 다른 문화권의 의복이 공존하거나 융화된 것이다. 재밌는 점은 최근 모리야 신사가 정착하여 현대 문화가 직접적으로 유입되기 전까지는 많은 외래인이 유입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근대 이후의 의복 문화는 정착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아마 대부분의 정착한 외래인이 현대 사회에 대해 염세적인지라 자신들이 입던 의복을 빠르게 포기하고 ‘낭만적’인 근세 의복을 착용해서 그럴 것이다.

 

 의복을 만드는 과정이야 세상 어딜 가도 비슷할 것이다. 옷감의 원재료를 재배하거나 무두질하여 각 직조장에서 옷감 원단을 만든 후 재봉장이나 가정에서 의복을 만든다. 환상향 역시 이와 비슷한데 바깥 세계의 현대적인 과정에 비해 덜 효율적이지만 개인의 취향에 맞춰 다양한 의복을 만들어낸다. 우선 환상향의 옷감은 전통적으로 쓰이던 면, 마, 견, 모(목화, 삼, 비단, 양털)가 있지만, 그 외에도 다양한 신비로운 옷감들도 있다. 인간 마을에 사는 인간 입장에서 이런 옷감들을 접할 기회는 적지만 그나마 인간 마을에서도 종종 보이는 것을 언급해보겠다.

 

 인간이 가장 많이 접해보는 신비한 옷감은 갓파의 방수천이다. 놀랍게도 갓파의 방수천은 바깥 세계의 현대 기술로도 재현 못하는데, 방수력까지는 어떻게 재현할 수 있어도 갓파의 방수천처럼 천연 옷감의 재질감과 가공 편의성은 그대로 유지하지는 못한다. 갓파와 생활하거나 해봤던 인간들은 대부분 방수천 옷 한벌쯤은 가지고 있으며, 비록 한벌이지만 방수천의 성질상 그 내구도는 상당히 오래간다. 이는 인간이 구할 수 있는 방수천이 적다기 보다는 방수천 자체가 워낙 제조하기 어렵고 따라서 귀하기 때문이다. 갓파들 본인도 모든 옷이 방수천 재질임에도 그 옷 세트가 5벌을 넘지 않는다. 방수천의 정확한 제조법은 갓파들의 기밀이지만 추상적인 묘사를 들어보면 재료를 구하기 어렵다기 보다는 공정 과정을 공장화하는 것이 상상이 안될 정도로 어렵다고 한다.

 

 그 다음으로 인간 마을의 주민이 가장 많이 접하지만 자주 쓰지는 못하는 옷감은 텐구의 방풍천이다. 이 방풍천은 갓파의 방수천과 정 반대로 오히려 바깥 세계의 현대 기술을 토대로 재현한 것인데, 기존의 방풍용 원단 제조 과정에 환상향에서 구할 수 있는 각종 특수 재료를 첨가하여 만든 것이다. 텐구사회에서는 이렇게 제조된 방풍천을 인간과 텐구의 지혜와 기술을 합쳐 만든 최고의 ‘합성섬유’라 자랑하며, 실제로 그 방풍 능력이 뛰어난 것은 당연하며, 방수 능력 및 내구성도 어느 정도 잘 갖추고 있다. 다만, 막상 방풍천을 제조하는 외래인 기술자들의 반응은 시큰둥한데, 애초에 자신들이 들여온 기술이 바깥 세계에서 최첨단은 커녕 고급 기술도 아니기 때문에 NASA(미합중국 항공우주국) 등에서 쓰이는 특수 합성섬유 등과 비교하면 분명히 기능성이 떨어질 것이라 말한다. 오히려 이들이 주목하는 것은 친환경성과 양산 능력인데, 제조 과정을 조금 더 최적화하면 인간 마을에도 꽤나 보급될 것이라고 말한다.

 

 인간은 별로 접할 일이 없지만 주로 오니 및 지저에 사는 요괴들이 많이 쓰는 옷감으로는 츠치구모의 실로 만든 지옥비단이 있다. ‘지옥비단’이라는 이름은 츠치구모가 지옥에 살기 때문이 아니라(옛 지옥에 살기는 하지만 다른 지저 공간에서도 종종 확인된다.), 해당 옷감이 지옥의 뜨거운 열기를 막아주기 때문이다. 지옥비단은 방열 기능 외에도 훌륭한 내구성과 아름다운 빛깔 때문에 옛 지옥에 사는 각종 요괴와 오니 뿐만 아니라, 지상에 사는 오니들도 즐겨입는다. 다만, 다른 옷감처럼 양산이 가능한 것이 아니라, 츠치구모가 지옥비단을 만들 실을 제공해줄 때에만 제조가 가능하므로 여러 벌의 지옥비단 옷을 가지고 있는 경우는 거의 없다. 옛 지옥의 오니들은 일반적으로 지옥의 짐승가죽과 혼용하여 만든 작업복 한 벌, 특별히 꾸며입기 위해 지옥비단 위주로만 된 외출복 한 벌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이렇게 다양한 옷감을 마련하여 재봉장에 가서 옷을 의뢰하거나 직접 집에서 옷을 제조할 수 있는데, 앞서 이야기했듯이 비록 일본 전통복과 근세 서양복을 기반으로 하지만 개개인별로 옷을 제조하는 디자인 역시 꽤나 다양하다. 그런데 이 중에서 가장 개성적인 포인트를 잡자면, 역시 제각각 다른 레이스와 프릴, 무늬를 옷에 추가한다는 것이다. 이 레이스, 프릴, 무늬 등 장식은 개성과 자아 표현의 용도도 있지만 종종 마법과 주술을 옷에 부여하는 수단으로도 쓰인다. 실제로 마법사들의 옷을 보면 디자인이 같아보여도 옷에 다른 마법을 부여하기 위해 다른 레이스, 프릴, 무늬 등을 사용하기도 한다. 이런 점 때문에 재봉장에서는 보통 기반이 되는 옷까지만 제조하고 나머지 장식은 개개인이 집에서 하는 경우도 많다. 물론 외래인의 경우 모든 것을 재봉장에 맡기는 경우가 많으며, 심지어 되려 거추장스럽다고 아무 장식도 안 넣는 경우도 흔히 있다.

 

 개성이 강한 의복 문화와 달리 거주 문화의 경우 상당히 통일화되어 있다고 느낄 것이다. 환상향에서 좀 시간을 두고 집들을 둘러보면 외관만큼은 거의 비슷한 구조와 형태를 띄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기본적으로 지진이 잦은 일본의 지형과 더불어 각종 이변으로 발생하는 기후 왜곡에 대응하기 위해 최대한 안전한 형태로 거주 건물을 통일시켰기 때문이다. 지진, 혹한, 폭설, 폭우, 홍수, 폭염, 혹서, 강풍 등 모든 재난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이 집은 환상향에 오랜 세월 거주한 토착민들만의 노하우 축적이라 할 수 있다. 우선 2층으로 된 이 집은 지진에 잘 견딜 수 있도록 설계된 것은 물론이며, 폭설 및 홍수에 대비하여 2층으로 출입이 가능하다. 또한 기본 형태는 혹서와 폭염에 대비하여 통풍이 잘 되지만 여차하면 혹한과 강풍에 대비하여 추가 벽 재질을 손쉽게 덧붙여서 보온 및 방풍이 되도록 설계되어 있다. 이런 기능성을 유지하기 위해 집을 함부로 개조하는 것은 금지 사항이며, 당신이 이를 어길 시 마을 사람들이 협력하여 당신을 강제로 그 집에서 내쫓아 새 집으로 옮겨버릴 것이다.

 

 이와 달리 거주 공간 내부의 꾸미기는 집의 기능성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는 매우 자유로운 편이다. 물론 공통적으로 필요한 가구, 예를 들어 코타츠(일반적인 일본의 겨울을 생각하고 별로 안 추운데 난방 기구가 필요하냐고 하는 외래인들이 종종 있는데, 혹한 이변이 발생하면 코타츠 및 난방 기구의 유무가 생존 가능성을 좌지우지하기 때문에 매우 중요하다.), 화장실 등 위생 설비 등은 크게 외관 차이가 없지만, 나머지 데코레이션은 집 하나마다 제각각의 나라가 있다고 느껴질 정도이다. 이는 특히 외래인의 제각각 익숙한 풍습을 어느 정도는 유지하면서 살아가기 때문에 발생한다고 볼 수 있다.

 

 다만, 이런 특징은 어디까지나 인간 마을에 해당하는 점이며, 요괴들의 경우 기후 재난의 위협이 상대적으로 약하기 때문에 제각각 개성에 맞게 다양한 집을 짓고 산다. 어떤 차이인지 쉽게 풀자면, 어지간한 요괴는 지진으로 인해 지붕이 무너져도 죽지 않는다는 것이다. 재난이고 뭐고 자신이 원하고 편한 대로 집을 지은 후, 사고가 나면 그에 맞춰 매번 수리하는 경우가 더 많다. 예외가 있다면 텐구사회와 오니사회인데, 텐구사회의 경우 텐구의 성질상 조직성을 유지하기 위해 건축 양식은 물론 생활 공간 구조까지 어느 정도 통일시키는 성향이 강하기 때문이다. 오니사회의 경우 딱히 조직성을 강조하진 않지만 전통적인 가옥 및 건축 형태를 보존하고 유지하려는 성향이 있다보니 아주 획일적이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 양식은 서로 맞추면서 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