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알파] 환상향견문록/환상향에서 살아남기

11. 환상향에서 즐기는 문화 활동

by 판타스웜 2022. 12. 3.

 환상향에서 보통 유흥거리라 하면 연회와 스펠 카드 룰 기반 탄막놀이, 그리고 각종 스포츠와 게임 정도를 생각하지만, 이 외에도 잔잔한 유흥거리도 존재한다. 이런 유흥거리의 중심에는 히에다 가문과 그들이 남긴 여러 이야기가 있다. 얼핏 들으면 그저 역사적인 기록물이 유흥과 무슨 상관이 있겠냐 싶겠다만, 환상향의 이야기꾼 공연부터 노래, 시, 그림 등의 기반이 되는 것이 이 기록물이다. 실제 이 기록물의 형태를 보면 바깥 세계의 역사 서적보다는 전통적인 이야기의 모습을 하고 있다.

 

 인간 마을 중앙 지역에 있는 히에다 저택과 그 주변의 구조물을 살펴보면 이런 문화 형태를 확실히 알아챌 수 있는데, 히에다 저택 주변에는 주로 인지도 있는 이야기꾼, 노래꾼, 화가, 시인 등의 가옥 및 저택이 있으며 그 거리에서 조금만 더 걸어도 각종 공연장과 전시회장, 서점, 도서관과 같이 문화를 즐길 수 있는 장소가 있다. 이 장소는 평일에도 은근 사람들이 있긴 하지만, 가장 붐빌 때는 한 주를 편히 쉬는 일요일이다.

 

 이 중에서도 환상향에서 가장 인기 있는 문화 활동을 고르자면 아무래도 각종 음악과 노래꾼들의 공연이다. 왜냐하면 이야기꾼의 공연과 음악, 노래는 환상향의 거진 모든 거주자들이 즐길 수 있는 문화 활동이며, 이 중 이야기꾼의 공연보다는 음악과 노래가 좀 더 자극적으로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외래인들도 일본어를 말하고 들을 수 있는 주술을 통해 이야기꾼의 공연과 노래의 가사를 알아들을 수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종 일부 단어는 제대로 번역이 안되어서 못 알아듣기에 가사 좀 몰라도 즐길 수 있는 노래가 좀 더 선호 대상이 된다.

 

 하지만 정작 명성이나 인지도를 따지면 이야기꾼들이 더 높은 이유는 대개 이야기꾼이면 단순 이야기꾼 공연 외에도 소설 및 시집 집필까지 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히에다노 아큐 역시 다른 필명으로 소설을 집필하고 있다고 하며, 많은 이야기꾼이 종종 소설과 시를 집필하고, 또 이를 이야기꾼 공연을 위해 재활용하기도 한다. 또한 일부 사람들에게는 이야기꾼의 가치가 상당히 높은데 이는 비일본계 외래인은 물론 소수의 토착민들까지도 문자를 못 읽거나 어느 정도 읽어도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있어서 소설이나 시집을 샀어도 실제 내용은 이야기꾼을 통해 듣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반면 화가의 경우 이야기꾼이나 노래꾼과 달리 인기가 적은데, 아무리 각종 그림 예술에 대한 수요가 높아도 인간 마을에서 예술적인 그림을 생산하는 데에 시간이 상당히 걸리기 때문이다. 때문에 화가의 경우 보통 세공업 쪽으로 본업이 있고 여가 시간을 투자해서 부업으로 화가를 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그림이 대성공했다면 종종 명문가가 되어 전업 화가가 될 수도 있기는 하다.

 

 물론, 이렇다고 환상향의 문화 활동이 지극히 히에다 가문을 중심으로만 돌아가는 것은 아니다. 우선 인간 마을 내에서는 그 규모가 작지만 외래인을 중심으로 한 바깥 세계의 음악, 희곡, 소설집 등이 있으며, 이는 대개 영어로 되어 있다. 단, 영어가 주를 이루는 추세는 근래에 들어서야 해당되는 이야기며, 20세기 초만 해도 프랑스어, 스페인어, 독일어 등 다양한 유럽 언어가 쓰였다. 과거에는 이런 바깥 세계의 문화 유입이 그저 외래인의 구전으로 인한 것이었지만, 더 다양한 외래인이 환상향에 정착하면서 바깥 세계의 문화풍으로 창작물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실제로 히에다노 아큐가 즐긴다고 하는 락 음악도 외래인이 이미 바깥 세계에 유행하고 있던 락 음악을 들여온 것보다는 본인이 락 음악 작곡가로서 락 음악 장르 자체를 환상향에 알린 것이다.

 

 요괴 사회에서도 각종 노래와 춤, 이야기를 만들고 전파하는데, 이 중에서 가장 큰 규모로 음악 행사를 하는 곳은 바로 오니 사회이다. 오니의 음악 행사는 보통 연회 및 축제와 연계하여 진행되는데, 주로 거대한 타악기류를 중심으로 박진감 있는 음악이 행사장에 울려퍼진다. 또한 오니 사회의 문화 활동과 인간 마을의 문화 활동 중 가장 큰 차이는 인간 마을과 달리 오니 사회에서는 자주 연극 형태의 공연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인간 마을은 어디까지나 농장과 공방에서의 노동을 중요시하다보니 예술인이 아닌 일반 사람들도 제각각 문화 창작 활동을 하지만 연극 공연과 같은 많은 노동력이 필요한 활동은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 반면 오니 사회는 인간 마을처럼 주기적으로 수행해야 하는 노동의 비중이 그리 크지도 않고 연회와 축제 등의 집단 문화 활동을 중요시하기에 심심하면 연극 공연을 한다. 다만 이런 연극 공연에 인간이 아주 관여를 안 하는 것은 아닌 게, 최근의 많은 연극의 대본은 인간 마을의 이야기꾼과 소설가가 작성한 것이기도 하다.

 

 텐구 사회의 경우 직접적인 문화 활동 생산에는 별 영향을 못 주지만 소비 시장으로서는 큰 역할을 한다. 경직되어 있고 개개인에게 스트레스를 많이 부여하는 텐구 조직 내에서 텐구 개개인은 평일 저녁과 주말마다 그 스트레스를 해소할 출구를 찾는데 이 때 평온하거나 경쾌한 음악만한 것이 없다. 이를 즐기기 위해 텐구들은 오니의 축제나 인간 마을의 공연장에 대놓고 입장하든, 숨어서 입장하든 어떤 방식으로라도 돈을 써가면서 유흥을 즐긴다. 텐구 조직의 지배층은 이렇게 텐구 화폐의 일방적인 외부 유출에 대해 우려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일단은 텐구 화폐의 유통 활성화의 좋은 계기로 보고 손을 떼고 있다. 오히려 대신 텐구 사회, 정확히는 텐구 자본을 기반으로 문화 소비처를 생산할 방안을 궁리하고 있다.

 

 이를 위해 텐구 자본은 갓파 기술자들과 외래인 기술자들을 포섭하여 바깥 세계의 미디어 관련 기술을 모방하려고 한다. 이런 시도의 첫 계기는 텐구 기자들의 사진 전시회와 생각보다 좋은 반응이었다. 본래 텐구 기자들의 사진 촬영기는 어디까지나 정보를 수집하기 위한 것이었으나, 우연히 아름다운 풍경이나 재밌는 장면을 촬영한 사진들은 재밌는 유흥거리가 되었고 이를 통해 용돈 정도를 벌어보려 했던 텐구 기자들은 이 사진들을 팔거나 전시회를 열었다. 그 결과, 전부 다는 아니었지만 일부 전시회는 큰 인기를 끌었고 텐구의 윗사람들은 사진 촬영기로 달성할 수 있는 영역에 더 관심을 가졌다. 그 결과 텐구 자본은 외래인들을 통해 영상 미디어에 대해 알게 되었고, 이를 생산 및 배포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도록 갓파 및 외래인 기술자들을 고용하고 집중 투자하고 있다. 그 결과 가제 ‘4D 영상 촬영기’가 개발되었고, 비록 일반적인 영상 촬영기보다 조작 및 촬영 조건이 번거롭지만 대신 해당 공간의 모든 요소, 냄새, 바람, 습도 등을 온전히 ‘녹화’가 가능하여 되려 바깥 세계의 문물보다 뛰어나다고 할 수 있다.

 

 오니 사회와 텐구 사회 외에도 의외로 환상향의 문화 활동에 큰 영향을 준 곳은 홍마관이다. 에도 시대 무렵 남방인 주술사들의 유입, 이후부터 꾸준히 이루어졌던 서방의 외래인 유입 등 분명 환상향에는 서방 문화가 들어올 기회가 많았으며, 실제로 꽤나 들어왔지만 대부분은 서민과 평민의 근현대적인 문화였다. 그에 비해 홍마관의 환상향 정착은 중세 및 근대 서양 귀족 문화의 유입 계기가 되었다. 대표적인 예로 홍마관과 그 안에 있는 대도서관을 관리하는 파츄리 널릿지의 도움으로 전통적인 오페라 공연을 시도한 적이 있었다. 이 시도는 성공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환상향 내의 다양한 문화 확장의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실제로 서양 귀족 문화를 향유하는 홍마관과 별개로 대도서관에는 고금동서의 각종 문화에 대한 기록이 남아있기에 많은 예술인들이 대도서관에 입장하고 싶어한다.

 

 하지만 이렇게 복잡하게 각종 문화 활동과 유흥거리에 대해 이야기해도, 갓 환상향에 온 외래인과 어린이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유흥거리는 바로 늦은 저녁의 요정 축제이다. 실은 특별히 축제인 것도 아니고, 요정들 입장에서는 그냥 늦은 저녁에 호수가에서 노는 것이지만, 외부인이 보기에는 밤 속의 호수에 요정들이 아름다운 빛깔로 자수를 놓는 듯한 아름다운 광경이다. 이와 비슷한 광경은 리글 나이트버그라는 반딧불이 요괴의 반딧불이 쇼도 있으며, 가끔 합동으로 야밤을 꾸미는 것을 구경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