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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파] 환상향견문록/미식과 환상향의 역사

6. 야만바와 산을 누비는 사냥꾼 클럽

by 판타스웜 2023. 9. 16.

1) 야만바의 친구 요수 사냥꾼 클럽

 잊혀져 가는 존재들이 도착하는 종착역, 신과 요괴가 아직 인간과 더불어 사는 장소, 환상향, 이렇게 거창하게 말하지만 보통 환상향은 지리적으로 일본에 위치하고 있으니 토착민들이 일본 문화를 향유하듯이 신과 요괴도 대부분 일본 출신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인외 중 일본이 아닌 해외 출신이 되려 더 많은 게 아닐까 헷갈릴 정도로 ‘외국’ 출신 인외가 많다. 정확히는 외국 출신이라고 하기는 어렵기도 한데, 전설이나 설화에 기록된 유명한 요괴 정도가 아니면 대부분의 인외, 특히 요수나 마법사는 인간이나 신처럼 국경과 문화권에 귀속되지 않고 세상을 유랑하고 다닌다. 이 중 특히 요수는 대부분 금수에서 시작하여 요물의 경지까지 도달하는 것이기에, 더더욱 국경와 문화에 귀속되지 않는다. 오늘은 이들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요수 중 환상향에 가장 많이 환상들이(요물화되기 전이라 그냥 자연 속 동물처럼 그대로 들어왔다가 요수가 되는 경우도 있다.)하는 종류는 당연하지만 상대적으로 이동에 제약이 없는 조류 요수다. 이들 중 이미 인간형으로 변신할 수 있는 경지에 도달한 경우도 많지만, 완벽히 요물의 경지에 다다르지 못해 아직은 거대한 새의 형태를 하고 다니는 경우도 적지 않다. 바깥 세계와 달리 환상향에서는 자신의 본 모습을 억지로 숨기고 다닐 필요가 없기에 많은 조류 요수는 환상향에 평온함을 느끼고 요괴의 산 속에 둥지를 짓고 알도 낳고 살고자 한다. 안타깝게도 이 조류 요수의 생각은 틀렸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거대한 둥지를 짓고 거대한 알을 배란한 조류 요수는 거대한 몸을 웅크리고 둥지에 잠이 든다. 하지만 둥지를 짓기 시작할 때부터 그 주변에는 매복하고 있는 누군가가 있었다. 그것도 여럿이나 말이다. 이 글을 작성하는 필자도 실은 취재를 위해 그 장소에 있었다. 내 옆에 있던 ‘이니시에이터(Initiator, 최초발포자)’는 조류 요수가 완전히 잠들었다는 것을 아주 잠깐이지만 위장 밖으로 손짓하여 알린 후, 조류 요수를 향해 철포(조총 같은 게 아니라 손대포 같은 것이다.)를 조준한 후 방아쇠를 당겨 발포한다. 철포에서 발사되어 거대한 쇳덩어리가 조류 요수의 허벅지에 박히자, 요수는 날카로운 비명을 지르며 날아오르면서 도망치려 한다. 이윽고 다른 곳에 위장하여 둥지를 둘러싸고 있던 다른 사냥꾼들도 거대한 작살을 발사하여 조류 요수의 몸뚱아리에 작살을 걸었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요수를 생각하면, 당연히 인간 사냥꾼들의 사사로운 작살은 내팽개치고 날아서 도망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실제로는 달랐다. 왜냐하면 철포로 발사한 쇳덩어리에는 강력한 마취약이 발라져 있었고, 요수는 이 약효과 때문에 제대로 날개에 온 힘을 주지 못했다. 물론 그렇게까지 했어도 요수는 점점 날아올랐고 작살을 발사한 인간 사냥꾼들은 온갖 수단을 동원해서 작살과 이어진 발사대를 지면에 붙어 있도록 유지했다. 점점 발사대가 공중으로 뜰 때쯤, 무언가가 높은 곳에서 도약하여 요수의 몸에 메달렸다. 원시적인 옷차림과 거대한 석기 무기, 놀랍게도 보통 다른 존재와 협력하지 않고 고독하게 살아간다고 여겨지는 야만바였다. 야만바 한 명이 요수의 몸에 메달리자, 다른 두 야만바도 마저 요수에 올라타서 날뛰는 야만바의 머리를 내려치고 날개를 찢기 시작한다. 세 요괴가 치명상을 가하자 요수는 결국 힘을 다하여 지면에 쓰러지고 야만바들이 몸에 묻은 피를 닦는 사이에 인간 사냥꾼들은 요수의 사체를 손질하기 시작한다.

 요수를 해체하여 가죽이나 깃털묶음, 육고기로 모두 가공했을 쯤에는 해가 저물고 있다. 야만바와 사냥꾼들은 야영 캠프를 만들고 조촐한 연회를 위한 요리를 시작한다. 우선 장기간 보존을 위해 소금에 절인 육고기를 제외하고 연회 때 먹을 남은 고기는 구이용과 고기나베용으로 구분한다. 마침 넓고 묵직한 돌판을 찾은 야만바들이 돌판구이를 요리하기 위해 세팅하여 아래에 불을 피우고 있다. 보통은 이대로 돌판에 고기를 굽지만 오늘은 특별한 날인지, 고기를 얇고 먹음직하게 썰어서 요수의 둥지에 있던 거대한 알의 윗부분만 잘라 흰자와 노른자를 잘 섞은 후  퍼내어 고기를 약간의 소금과 버무리고 난 다음, 육전을 굽기 시작했다. 고기나베를 담당하는 사냥꾼들은 미리 준비해 둔 거대한 냄비에 산에서 나는 온갖 나물을 깔고 나베용 고기를 먹기 좋게 손질하여 넣은 후, 물과 소금을 넣어 끓인다. 이후 어느 정도 끓으면 불을 끄고 간장을 넣어 간을 마저 맞춘다. 보통은 이렇게 두가지 요리로 연회의 준비가 끝나지만, 오늘은 특별히 손님(필자)도 왔고 사냥꾼 클럽의 일원 중 하나가 성인이 되는 날이라 특별히 거대한 알을 사용한 요리를 해준다고 한다. 아까 육전을 굽느라 약간 남은 흰자와 노른자를 거대한 알에 그대로 두고 아직 조리하지 않은 쌀과 물을 넣어 알을 거대한 솥인 것마냥 끓인다. 이렇게 완성된 밥은 계란 덕분에 고유의 고소함이 느껴진다. 환상향의 연회임에도 불구하고, 특이하게 술이 없는데, 생각해보면 애초에 술이 문명의 잉여생산물로 만드는 것이 대부분이라 야만바들이 딱히 술을 선호 대상으로 여기지 않는 듯 하다. 대신 산에서 나는 열매로 만든 과즙과 벌꿀차가 주된 음료이다.

 야만바와 요수 사냥꾼 클럽의 사냥은 이렇게 끝이 났다. 야만바는 보통 어지간해서는 다른 인간은 물론 다른 요괴와도 교류를 하지 않는 편이다. (다만 되려 그나마 인간과 교류를 하는 편이고, 오히려 다른 요괴는 야만바마다 다르지만 기본적으로 적대하는 경우가 더 많다고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요수 사냥꾼 클럽과 협동하는 이유는 요수를 더 쉽게 잡아 가치 있는 육고기와 가죽 등을 얻기 위한 것도 있지만 두가지의 다른 이유도 있다. 하나는 자신들의 거처인 요괴의 산에 요수가 점점 늘어나 생존의 위협이 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다. 요수와 직접적으로 자원 경쟁을 한다기 보다는, 요수 중 흉포한 개체가 힘을 키우거나 세력화하여 독립주의적이고 비협조적인 야만바들을 거슬려하여 공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텐구들은 의외로 이런 현상에 상당히 둔감한 편이다. 애초에 텐구 조직 자체도 공격적으로 확장하는 요괴 조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굳이 인간 무리와 어울릴 필요는 없을 것이다. 야만바와 요수 사냥꾼 클럽의 관계는 좀 더 감정적인 것이다.


2) 최초의 사냥꾼 클럽 탄생과 야만바와의 인연

 사냥꾼 클럽 자체가 탄생한 시기는 생각보다 근래인데, 먼저 환상향 내 야인野人의 기원에 대해 먼저 이야기해야 한다. 야인 자체는 현재로부터 약 500년 전 쯤의 환상향에도 등장한다. 본래 야인이란, 주로 농경 사회인 마을에 적응하지 못하여 마을 밖 야생에서 수렵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당시 환상향은 주술사 가문 위주라 야인이 발생할만한 요소는 적었지만, 주술사 가문의 생활 방식에 따르지 못하고 기어코 야인이 되는 경우도 있긴 했다. 다만 당시에는 요괴들도 훨씬 강력하고 난폭한데다 식인에 거르낌이 없어서 곧장 죽었다.

 본격적으로 제대로 생활하는 야인이 환상향에 등장하게 된 것은 하쿠레이 대결계 이후다. 파리 코뮌 항쟁, 러시아 혁명과 적백내전, 스페인 내전 등 이념투쟁의 여파로 바깥 세계에서 환상들이한 외래인들로 인해 인간 마을의 사회구조가 개변하고, 그로 인해 마법사들이 마법의 숲에 자리잡고, 추가로 요괴의 산에 있는 텐구 사회가 점점 발전하면서 수렵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야인이 이제 모자란 자원 수급과 위협으로부터의 보호를 인간 마을, 텐구 사회, 마법사 커뮤니티로부터 교역을 통해 얻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야인들은 수렵한 자원을 마법사들과는 대요괴 마법물품과 거래했고, 텐구 사회와는 사냥을 위한 공산품과 거래했고, 인간 마을과는 안정적인 생계물품과 거래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인으로서 살아간다는 것은 언제든지 요괴들에게 습격당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위험한 것이다. 그러면 누가 야인으로 살기를 결정하는 것일까? 크게 두 가지로 나뉘는데, 첫번째는 앞서 말했듯이 환상향의 농경사회적 노동환경은 물론이고 텐구 사회의 근대식 공업 사회에도 적응하지 못하는 경우이다. 환상향 토착민 중에서도 이런 경우가 드물게 있지만, 보통은 외래인이고 수렵 사회, 유목 사회 등 농업이나 공업을 주된 생업으로 삼지 않는 지역 출신이거나 전문 군인, 용병 등 제대로 된 노동(생산활동)을 한 적이 없는 경우가 상당수이다. 물론 역으로 이에 해당하는 외래인 중 대부분은 야인이 되지 않고 환상향 내 공동체에서 잘 적응하며 살아간다. 오히려 기존의 불안정한 삶을 벗어나고 싶어하는 경우가 되려 많았으면 더 많았지, 일부러 야인이 되는 사람은 아예 없다고 볼 수 있다.

 두번째는 분명 드문 경우지만 전자보다는 되려 더 많은 경우인데, 환상향에 거주하는 어린 인간 아이가 야생에서 길을 잃고 야만바에게 구조되어 성인일 때까지 키워진 경우다. 야만바는 길 잃은 인간을 만나면 보통 겁을 줘서 달아나게 하지만, 어린 아이에 한해서는 자신이 데리고 키우는 습성이 있다. 야만바는 나름 어린 아이가 다 크면 인간 사회에서도 생활 할 수 있도록 아이를 키우긴 하는데, 의도가 그런 것이지, 실제로 그 아이는 인간 문명에서 단절된 야생에서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때문에 실제로 야만바가 키운 아이는 대개 성인이 된 직후에는 인간 마을에 적응하는 데에 큰 어려움을 겪는다. 그렇다 하더라도 과거에는 살기 가득한 요괴와 자원 수급 문제로 위험한 야생에 사느니 인간 마을에 어떻게든 최대한 적응하는 것을 선택했었다. 하지만 점점 시간이 흘러 야생에 사는 것이 이전보다 덜 위험하게 되자, 야생에 혼자, 혹은 자신들끼리 소규모 가족을 꾸리며 사는 것을 선택하게 되었다.

 이런 배경을 토대로 최초의 사냥꾼 클럽이 탄생하게 된다. 바깥 세계가 냉전 체제로 진입하고 어느 정도 지난 후, 야만바의 손길을 탄 여러 젊은 야인들이 모여서 ‘사카타의 아이들’이라는 사냥꾼 공동체 조직을 만든다. 당시 본인들 입으로는 조직명을 자신들과 같이 야만바를 어머니로 둔 전설 속 ‘사카타 킨토키’의 이름을 본따서 그리 지었다고 한다. 문제는 정작 실제로 환상향에 존재하고 인지도가 야만바들 중에서는 꽤 되는 ‘사카타 네무노’가 이 조직과 계속 엮이니까 조직명을 바꾸라고 항의했다는 것이다. 당시 상황에 대해 사카타 네무노의 인터뷰는 이러하다.

 “맞아, 그때는 진짜 신경 쓰이고 귀찮았어. 가끔 다른 야만바네 집에 놀러가면 자꾸 어린 아이들을 그렇게나 주었냐면서 그 ‘사카타의 아이들’이라는 녀석들에 대해 이야기하니까 계속 신경 쓰였어. 내가 마지막으로 길 잃은 아이를 보살핀 것도 지금으로부터 200년도 넘었어. 그런데 계속 그런 이름을 쓰니까 다 큰 녀석들인데도 걔네들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내가 책임져야 할 것 같잖아? 그래서 수소문 끝에 녀석들의 위치를 찾아내서 이름 바꾸라고 따졌지. 웃긴 건 녀석들은 내가 실제로 있는지도 몰랐다더라. 전설 속 유명한 녀석의 성이 나랑 같다고 이렇게 피곤한 일이 생길 줄이야.”

- 요괴의 산 어딘가에 거주하는 야만바 사카타 네무노와의 인터뷰 중 일부 -


 이렇게 조직명을 바꿔야 되는 상황인데, ‘둥지도둑 신스케’라는 별로 안 강하지만 전술과 회계에 능통한 한 야인이 조직에 합류하면서 이왕이면 조직명과 함께 그 구조도 바꾸자고 하였다. 신스케는 조직명을 ‘요수 사냥꾼 클럽’으로 바꾸면서 동시에 기존의 가족 개념과 비슷한 공동체 조직을 여러 개인과 공동체를 이어주는 네트워크형 조직으로 바꾸었다. 이후 신스케는 여러 야인들을 모아서 네트워크형 조직을 토대로 평소에는 기존에 살던대로 따로 생활하지만, 특별히 강력한 요수를 사냥하게 되면 집결하여 함께 공략하기로 협의했다. 참고로 신스케는 새 조직이 탄생하면서 분리된 과거 공동체인 ‘야만바의 아이들’에 합류했는데, 이 공동체가 야만바의 손길을 타지도 않은 이 외래인을 받아들인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야만바의 아이들’ 중 상당수가 미남형인 신스케에 대해 성적 호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라 한다. 의외로 야만바가 키운 야인들 중에서는 여성도 많았다는 것인데, 이들은 인간 마을의 농업에 종사하는 일반적인 여성보다 덩치가 더 컸다. (참고로 환상향의 일반적인 여성도 바깥 세계의 동아시아인 여성과 비교하면 덩치가 꽤나 큰 편이다.)

 처음 등장한 ‘요수 사냥꾼 클럽’은 앞서 서술한 것처럼 작살과 총포를 활용하여 요수를 사냥하는 편이었지만, 초창기 사냥꾼 클럽이 사냥할 수 있는 요수의 수는 생각보다 적었다. 요수는 점점 더 강한 개체만 환상들이하고 있는 마당에, 결국 퇴마 전문 기술도 없는 인간이 요수를 사냥한다는 것은 목숨을 걸어도 모자랄 정도로 어려운 일이었다. (퇴마사들이 사냥하면 되지 않냐고 되물을 수 있고, 실제로도 퇴마사들이 주기적으로 거대 요수를 상대로도 퇴마를 하긴 하지만, 이렇게 퇴마한 요수의 시체에서는 가용한 자원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정작 사냥꾼 클럽이 힘들게 요수 사냥에 성공해도, 이를 가로채려드는 요괴들 때문에 온갖 고생은 사냥꾼 클럽이 하고 보상은 요괴들이 다 챙겨간다는 것이다. 결국 야인들은 사냥꾼 클럽에서 활동하면서 얻는 이익은 별로 없고, 그냥 평범한 짐승과 약한 요수 정도만 사냥하거나 수렵 활동을 하는 것이 더 이득이었다.

 한편, 야만바들 역시 혼자서, 혹은 두세명이 모여서 요수를 사냥하기도 했는데, 야만바 입장에서도 점점 더 강하고 가지각색의 기술을 사용하는 요수를 상대하는 것이 점점 버거워졌다. 하지만 그렇다고 야만바들은 아무나 신뢰하여 같이 사냥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이 상황에서 ‘야만바의 아이들’ 중 하나가 자신을 키워줬던 야만바에게 사냥을 도와달라고 부탁했고, 야만바는 이를 수락했다. 이들의 첫 합동 사냥은 대성공으로 끝나는데, 사냥꾼 클럽의 치밀한 전략으로 강력한 멧돼지 요수를 온전하게 사냥한 것은 물론이고, 약탈을 노리던 요괴들도 야만바를 보고서는 물러서야 했다. 이 사냥 성과에 대한 소문이 다른 야만바들에게도 알려졌고, 이후 야만바와 요수 사냥꾼 클럽은 서로 뗄 수 없는 관계가 되었다.


3) 사냥꾼 클럽이 불러들인 문제점과 그 해결책, 그리고 아직 남은 갈등

 요수 사냥꾼 클럽의 사냥 방식이 알려지자, 몇몇 요괴들이 이 인간과 요괴 간의 협력 관계를 악용하기 시작했다. 과거 요괴와 인간의 관계는 주로 포식자와 먹잇감의 관계였고, 요괴는 주로 인간과 대립했다. 때문에 인간을 포식하는 요괴에 맞서 인간은 스스로 주기적인 퇴마 활동을 벌였고, 하쿠레이의 무녀는 어지간한 요괴-인간 간 갈등에 대해서는 인간 편을 들고 요괴를 퇴치하거나 억압했다. 하지만 하쿠레이 대결계 이후 환상향의 요괴는 가끔 이미 죽은 인간의 시체를 먹긴 해도 주로 인간의 공포를 먹는 인간과의 공생 관계를 구축했고, 오히려 환상들이한 다른 요괴와 갈등을 빚는 경우가 많았다.

 앞서 이야기한 요수 역시 요괴의 일종이며 야만바가 요수를 사냥하는 것 역시 요괴가 다른 요괴를 사냥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텐구 등 일부 사회적인 요괴를 제외하면 이렇게 대부분 요괴들은 상호간의 결투와 폭력을 통해 갈등을 해결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에 대해서는 하쿠레이의 무녀는 물론 야쿠모 가 등 대부분의 외부 조직이 관여하지 않았다. 그런데 정작 이론상 사냥당하는 요수가 야만바와 사냥꾼 클럽에 대항해 반격을 하고, 이로 인해 사냥꾼 클럽의 인간들이 죽게 되면, 하쿠레이의 무녀에게 사냥으로부터 살아남은 요수를 퇴치할 명분과 의무가 생긴다. 

 요괴-인간 간 갈등은 대응하지만 요괴 간 갈등에는 대응하지 않는 ‘공권력’을 악용하기로 한 요괴들은 몇몇 인간들을 용병으로 고용하고, 자신이 적대하는 요괴를 공격했다. 공격받는 요괴는 반격하고 싶어도 상대 요괴와 동행한 인간들 때문에 반격에 소극적일 수 밖에 없고, 결국 잘 대응해봤자 공격으로부터 도망치는 것일 뿐이고, 대응에 실패하면 죽음에 다다르기까지 했다. 실제로 한 요호(여우 요괴)가 갓 환상들이하여 자신의 남편과 바람 핀 호랑이 요괴를 죽이기 위해 몇몇 인간 퇴마사 및 포수를 고용하여 호랑이가 잠들었을 때 습격했다. 환상향의 법칙에 대해 잘 모르는 호랑이는 기습에 맞서 인간들을 몇몇 죽이게 되었는데, 이를 감지한 하쿠레이의 무녀(현재 기준으로는 선대 무녀다.)는 자초지종과 상관 없이 우선 호랑이 요괴를 퇴치하고 죽여버렸다. 상황을 알게 된 하쿠레이의 무녀는 자신의 실수에 대해 자책하면서 야쿠모 가에 문제를 제기했다. 당시 상황을 좀 더 구체적으로 알기 위해 다음 야쿠모 란과의 인터뷰를 첨부한다.

 “먼저 그래도 당시 무녀의 판단에 대해 변호를 해보자면, 그 호랑이 요괴는 환상들이했을 때부터 말썽꾼이었지. 툭하면 인간 마을 주변에 내려와 농부들에게 먹을 것을 내놓으라고 협박하고, 여자든 남자든 꼬드겨서 바람을 폈지. 진짜 딱 죽지 않을 정도로만 온갖 악행을 저지르고 다녔어. 문제는 그러다가 결국 한 여우 요괴의 남편마저 홀려서 뺏어버렸지. 아, 당연히 나나 대텐구의 츠카사는 아니야. 나야 그 정도 요괴는 직접 팔과 다리를 분질러버리는 게 어렵지도 않고, 츠카사라면 텐구들의 도움을 받는 게 훨씬 더 쉬우니까 말이야.

 그 여우는 호랑이보다 약했어. 그렇다고 강력한 친구들의 힘을 빌릴 수 있는 처지도 아니었고. 그래서 머리를 써서 인간들을 끌어들이고, 같이 호랑이를 공격했어. 일부러 호랑이가 인간을 해치고, 무녀가 호랑이를 척살하도록 유도하려고 말이야. 호랑이가 인간들을 죽였을 때, 무녀는 자연스레 ‘저 녀석이 드디어 일을 저질렀구나!’라고 생각하면서 호랑이를 척살했지. 그 때 당한 인간들도 단순 고용된 포수들만 있던 게 아니라, 인간 마을에서 평판이 좋았던 퇴마사도 있었기 때문에 무녀는 더 편파적으로 판단했던 것이고. 그런데 알고보니 무녀는 이용당했던 것이고, 호랑이가 죽을 죄까지 지었냐고 하면 애매한 상황이 되어버린 것이지. 그래서 무녀가 우리에게 이 사건을 보고한 후, 환상향의 법칙을 좀 바꿔야 했지. 요괴에게 자발적으로 가담한 인간은 요괴와 동일하게 취급하도록. 어찌보면 인외가 된 인간에 대한 방침과 동일한 맥락이라 볼 수 있겠지.”

- 환상향의 관리자, 야쿠모 란과의 인터뷰 -


 요괴와 같이 하는 인간을 요괴와 동일하게 취급하겠다는 공문이 발표되자, 두가지 현상이 발생했다. 하나는 야쿠모 가에서 의도했듯이, 요수 사냥꾼 클럽과 같은 특정 사례 빼고는 사리사욕을 탐하는 요괴와 인간은 더 이상 함께 동행하면서 음모를 계획하지 않았다. (물론, 옛날부터 하던 대로 요괴와 인간이 별개로 행동하면서 음모를 꾸미는 건 여전하다.) 인간이 굳이 요괴와 동행하면서 위험을 감수할 메리트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반면, 나름 명분을 추구하는 요괴와 인간은 아예 인간 마을에 동조자들까지 확보하여 사건을 저지른 후, 인간 마을의 지지를 얻어 그저 요괴 간 분쟁으로 대하지 않도록 정치적 압박을 가했다. 이런 방식은 선대 무녀가 은퇴할 때까지 이어졌는데, 현재 무녀, 즉 하쿠레이 레이무가 아주 어린 나이에 무녀로 임명되었을 때는 이런 정치적 압박이 의미가 없다보니 점점 사그라들었다. 그리고 현재 무녀가 스스로 판단할 수 있을 정도로 성장했음에도 정치적 압박이 전혀 의미가 없는 데다, 스펠 카드 룰이 정착하고 모리야 신사 등 여러 변화가 생기면서 일반적인 요괴와 인간이 동행하며 모략을 꾸미는 일은 거의 사라졌다.

 하지만 요수 사냥꾼 클럽이 만들어낸 문제점은 그 뿐만이 아니었다. 엄밀히 따지면 사냥꾼 클럽이 있기 전부터 있던 문제지만, 요수 사냥꾼 클럽이 생기면서 요수 사냥이 더 활발해짐에 따라 부각되는 문제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요수는 요괴의 일종이라 할 수 있으며, 실제로 (상대적으로) 어린 요수가 성장하면 나즈린(묘렌사의 요괴 쥐)이나 카소다니 쿄코(묘렌사의 야마비코)처럼 인간형으로 변할 수도 있고 지성이 있는 요괴(엄밀히 따지면 어린 요수일 때부터 어느 정도 지성이 있긴 하다.)가 된다. 즉, 어떻게 보면 어떤 요괴 입장에서는 특정 요수를 동족으로 여기고, 그들의 죽음을 막고 싶어할 수도 있다. 즉, 어떤 요괴는 요수 사냥꾼 클럽의 야인 사냥꾼들을 몰래 죽이거나 해치려 들 것이다.

 물론 실제로 상당 수의 요수 간에는 동족이라는 인식이 그다지 강하지 않지만, 유독 종 자체가 무리 생활을 많이 하는 경우, 특히 조류의 경우에는 동족 의식이 강하여 요수를 보호하려는 것은 물론, 평범한 동종의 동물조차도 보호하려고 한다. 대표적인 예로 ‘조류 보호 연맹’이라는 조류 요괴 모임은 인간 마을 등 환상향 전역에 (다소 미미하긴 하지만) 조류 사냥 및 도축을 억제하려고 한다. 야작식당으로 유명한 미스티아 로렐라이도 이 연맹에 소속되어 있는데, 외곽 농장지구의 외래인 농부들은 이 밤참새의 훼방과 테러가 고약하다고 하지만, 놀랍게도 그는 오히려 온건파에 속한다. 조류 보호 연맹 중 과격한 일부는 야만바의 보호를 뚫고 사냥꾼 클럽의 야인을 몰래 암살하려 하며, 종종 실제로 성공한다. (종종 환상향에 대해 잘 모르는 외래인이 신과 요괴를 구분하지 못해 닭의 신이자 지옥 관문의 문지기 니와타리 쿠타카를 ‘조류 보호 연맹’ 소속이라는 소문을 퍼뜨린다. 하지만 실제로는 신이라 애초에 가입도 안 되며, 아무리 닭의 가축화를 안 좋게 본다고 해도 인간을 함부로 해치지 않으며, 오히려 습격당한 사냥꾼을 보호해줬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런 문제와 갈등이 있음에도, 요수 사냥꾼 클럽은 여전히 요수의 고기와 가죽 등을 환상향 전역에 공급하고 있다.


4) 환상향에서의 요수 요리

 환상향에서 본격적으로 요수를 어떻게 요리하는지를 이야기하기 전에, 요수 고기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환상향 전역으로 퍼지는지에 대해 간단히 알아보겠다. 요수 사냥꾼 클럽을 조직한 신스케가 사냥한 요수의 전리품을 텐구 사회와 인간 마을, 마법의 숲, 가끔은 옛 지옥에 판매했듯이, 사냥꾼 클럽에서 셈을 잘 하고 사교성이 좋은 사냥꾼이 이런 교역을 담당하게 된다. 이들이 직접적으로 해당 사회에 들어가기 보다는, 각 사회별 중간 교역상이 수레나 마차와 같은 운반 수단을 가져와 거래 전에 협상한대로 물물 교환을 한다. 이 과정을 통해 넘어간 요수 고기는 보통 각 사회의 전문 요리사에 맡겨진다. (예외로 마법사들은 요수 고기를 구매하는 경우는 드물며, 구매하더라도 보통 식재료보다는 연금술이나 강령술과 같은 마법 재료로 사용한다.)

 텐구 사회에서 요수 고기는 고급 보양식 재료로 여겨지며, 이를 사용하여 만든 요리는 오로지 텐마, 대텐구 등 소류의 상류층만이 즐길 수 있다. (실제로 그렇게 사치를 부리냐, 안 부리냐는 개인별로 다르다. 대표적인 예로 대텐구 가문(보통 대텐구는 실력제라 이런 것이 없다.)인 이즈나마루 일족은 보리주먹밥 등 저가 음식을 즐겨먹으며 유독 검소한 것으로 유명하다. 다만 이들도 손님을 접대할 때는 사치적인 음식을 준비한다고 알려져 있다.) 이 중 대표적인 요리는 바로 ‘비룡탕’이라 불리는 중국 북동부의 새 전골 요리이다.

 바깥 세계에서는 ‘진조(들꿩)’라는 희귀한 새로 요리하는데, 잘게 손질한 새고기를 소금, 요리용 술, 달걀 흰자, 전분과 함께 끓는 물에 잠시 넣었다가 건져서 물기를 뺀다. 이후 미리 준비한 닭 육수에 고기를 넣고 20분간 찌고 꺼낸다. 마지막으로 다른 냄비에 닭 육수를 새로 담고 끓이는데, 새 냄비가 끓기 시작하면 준비한 고기와 따로 데친 인삼(또는 산삼), 죽순, 버섯 등 야채를 소금 및 요리용 술과 함께 넣고 다시 끓이면 완성이다. ‘요수 비룡탕’은 이 ‘진조’ 대신에 조류 요수의 고기를 사용하는 것이다. 완성품만 보면 한식의 삼계탕과 비슷해 보이는데, 삼계탕은 생통닭 안을 찹쌀, 인삼 등 재료로 채우고 한 냄비에 오랫동안 쭉 끓이면 완성이기에 막상 비교하면서 먹으면 꽤나 다른 맛이 난다고 한다. 아무튼 이외에도 텐구 사회에서 요수 고기는 주로 전문 요리사를 통해 고급 중화요리의 재료로 많이 쓰이지만, 간혹 전문 요리사가 모두 바쁠 경우 텐마나 대텐구가 아닌 자들은 조리법이 쉬운 스테이크나 앞서 말한 삼계탕 같이 좀 더 간단한 요리로 먹기도 한다.

 인간 마을에서는 보통 요수의 가죽이나 발톱 등 요수 고기 이외의 재료를 더 중요시하지만, 종종 마을에서 위독한 사람들이 있거나, 전염병이 돈다고 여겨지면 요수 고기를 비싸게라도 사들여서 보양식을 만든다. 보통은 앞서 이야기한 고기나베를 마을 차원에서 요리하는데, 보양식을 먹어야 하는 자가 음식을 잘 먹기 힘들겠다 싶으면 죽 형태로 요리하여 먹이기도 한다. 요수 고기 자체는 인간에게 있어 일반적인 고기와 비슷한 맛이며, 닭, 소, 돼지, 양고기보다는 맛이 없기에 인간 마을에서 요수 고기를 미식 차원에서 찾는 경우는 인간 마을에 숨어지내는 요괴들 정도이다.

 아주 가끔 옛 지옥에서 오니들이 ‘구매’하려고 하는데, 실제로는 오니들이 옛 지옥에서 몰래 나와 충분히 요수 사냥을 하지 못해서 요수 사냥꾼 클럽에게서 억지로 뜯어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야만바들도 오니를 함부로 상대할 수는 없기에 사냥꾼 클럽은 그나마 오니들이 양심적인 가격을 제시하면 그걸 받아들일 수 밖에 없다. 어쨌든 인간인 필자는 오니들이 요수 고기로 어떤 요리를 하는지 거의 알  수 없지만, 대부분 요리는 요괴들에게는 미식이지만, 인간의 위장은 버틸 수 없다고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