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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파] 환상향견문록/화식파 마리사의 가정식

2월 : 연근 돼지고기말이

by 판타스웜 2024. 8. 31.

2월 : 연근 돼지고기말이

 

 밝은 태양이 사방에 깔린 눈에 반사되자 온 세상이 은빛이었다. 하지만 그 은빛은 흑백의 마법사의 얼굴을 따갑게 쬐고 있었다. 그래도 추위는 많이 누그러져서 스타킹 없이 치마를 입어도 상관 없을 정도였다. 키리사메 마리사는 마법의 숲 중에서 유독 큰 나무의 윗부분을 향하여 미니 팔괘로를 조준하였다.

 

 “흐읍……. 연부,「마스터 스파크 프로즌」!!”

 

 팔괘로에서 평소의 뜨거운 빛 대신 소용돌이치는 차가운 바람이 발사되자, 마리사가 노리고 있던 나무의 이파리는 마치 유리가 된 것 마냥 얼음 결정 형태로 얼어붙었다. 그 강렬한 위력에 비해 마리사는 불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이번에도 바로 불 마법은 안 써지네. 자잘한 냉기 마법이랑 불 마법이랑 전환하는 건 잘 되는데 꼭 마스터 스파크 프로전 버전만 팔괘로가 꼬인단 말이지. 에너지 전환 한계치는 충분할 터인데…….”

 

 마리사가 팔괘로를 살펴보는 와중에 갑자기 나무에서 무언가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소리를 들은 마리사가 가까이 다가가자, 거기에는 양 손에 덫을 달고 있는 백구 요괴, 미츠가시라 에노코가 얼어붙어 있었다. 왜인지는 몰라도 나무 위에 있던 에노코가 마리사의 마법에 직격당한 듯 하다. 당황한 마리사는 부랴부랴 먹통이 된 팔괘로를 집어넣고 맨손으로 열기 마법을 사용하여 에노코의 몸을 녹이기 시작했다. 다행히 불사의 몸을 지닌 에노코는 금방 해동되었으나, 마치 며칠간 아무 것도 못 먹은 것 마냥 빈약한 상태였다. 마리사는 바로 에노코를 빗자루에 태워 자신의 집 안에 들여 침대에 눕혔다. 얼마 안 지나 에노코가 눈을 뜨자, 이로리의 지자이카기에 걸린 냄비에서는 구수한 미소 냄새가 나고 있었고 마리사는 부엌에서 무언가를 칼로 써는 듯 했다.

 

 “윽… 여기는 어디지?”

 “아, 깨어났구나. 나 알아보겠어?”

 “너는……. 키리사메의 소녀군. 그렇다면 여기는 인간 마을인가?”

 “아니, 마법의 숲이야. 출가… 아니, 독립해서 혼자서 마법의 숲에서 마법상점을 차리고 살고 있지.”

 “그렇군. 점점 마법의 숲에 양식 집이 하나 둘씩 생기더니 그 중 하나가 네 집인 거군?”

 “그렇지. 지금 네가 좋아할 만한 요리를 준비하고 있긴 한데, 일단 냄비에 있는 미소장국 먼저 떠먹을래? 개 요괴가 좋아할 만한 음식은 아니긴 하지만.”

 “지금은 뭐든 좋아.”

 

 에노코는 지친 몸을 일으켜서 냄비 주변에 있는 그릇을 하나 집고 국자로 미소장국을 떴다. 미소장국을 그릇 안에 따르자, 두부와 팽이버섯이 보였다. 에노코의 표정은 썩 좋지 않았지만 당장은 뭐든 먹고 싶었기에 순식간에 들이켰다. 에노코는 일단 어느 정도 허기를 해소했다.

 

 “이거, 원래 니가 먹으려던 거지?”

 “맞아. 오늘 아침에 먹고 남은 건데 다시 뎁힌 거야. 먹을만해?”

 “아니, 고기가 하나도 없잖아. 그래도 덕분에 살았어.”

 “덕분에 살았다니, 너 불사의 몸이지 않아?”

 “뭔 말인지 알잖아. 그래서… 지금은 뭘 하는 거야?”

 “아, 연근 돼지고기말이. 정확히는 멧돼지고기지만 말이야.”

 “멧돼지고기… 맛있겠군. 미안한데 좀 더 누워있어도 될까?”

 “그래 그래, 다 되면 부를게.”

 

 에노코가 누워 있는 사이, 마리사는 다시 요리에 집중했다.

 

 연근의 껍질을 벗겨 먹기 좋게 통썰기를 한다. 연근을 5분간 물에 담았다가 다시 5분간 삶아낸 후 물기를 뺀다. 연근의 물기를 빼는 사이, 멧돼지고기는 얇게 저밀어서 통썰기한 연근을 하나하나 감쌀 수 있도록 한다. 고기에 돌돌만 연근을 밀가루에 살짝 묻혀서 기름을 두른 후라이팬에 올려 중간 불에서 양면을 굽는다. 잘 익었으면 간장, 청주, 설탕, 맛술로 만든 양념을 부어서 어느 정도 조린다. 간이 잘 베어들었다고 생각이 들면 접시에 올려 마무리한다.

 

 “자, 다 됐어. 한번 먹어봐.”

 “음……. 진짜 맛있군. 부드러운 연근 덕분에 소화도 잘 될 것 같고 양념도 맛있어서 평소라면 신나서 춤을 출 정도야. 하지만…….”

 “아, 그래. 역시 질보다는 양이구나. 여기.”

 

 마리사는 마저 적당히 구운 멧돼지 고기 3근 정도를 에노코의 앞에 차렸다. 에노코는 점점 허겁지겁 먹기 시작하면서 어느새 발랄한 모습을 되찾았다.

 

 “좋았어! 힘이 솟는다! 고마워, 키리사메 양!”

 “진짜 먹는 것만으로도 저렇게 회복될 줄이야. 그나저나, 마법의 숲에서 쓰러져 있던 이유는 뭐야?”

 “그야, 네가 냉기 마법으로 맞춰버렸으니까.”

 “아니, 내가 마스터 스파크 프로즌 쓰기 전에 말이야. 그 때도 아무 기척이 안 느껴졌다고.”

 “하하, 농담 좀 쳐본 거야. 쩝……. 두목이랑 어쩌다보니 싸워서 말이야. 본능적으로 도망치다보니 예전에 살던 마법의 숲으로 돌아왔더라고.”

 “두목이라면 쿠로코마 사키 말하는 거지? 경아조 우두머리 말이야. 분명 그 괴짜 성인의 애마였었다지?”

 “그래, 그 빌어먹을 도술사 놈들 때문에 두목이 제 정신이 아니라고!”

 

 토요사토미미노 미코의 이야기가 나오자마자 에노코는 식탁을 주먹으로 내리찍었다. 큰 소리에 마리사는 잠깐 놀랐고 에노코는 멋쩍은 표정으로 식탁을 다시 정리했다. 마리사는 대화를 이었다.

 

 “뭔 일이 있었던 거야?”

 “저번에 우연히 두목이랑 그 성인이랑 마주친 적이 있어. 잠깐 이야기하고 헤어지긴 했는데 그 이후로 두목이 계속 멍하니 있으면서 정신을 못 차리는 거야. 그래서…….”

 “그래서?”

 “....... 내가 그런 음흉한 녀석이 뭐가 중요하냐고 하니까 두목이 열불을 내면서 화를 냈고 나도 덩달아 화가 났고 결국 대판 싸웠지.”

 “역시 축생계 요괴들의 싸움은 살벌하구만. 그래서 그렇게 너덜너덜하게 된 거야?”

 “그렇지. 진짜 눈이 뒤집어진 채로 날 죽일 기세로 공격했다니까. 그깟 인간이 뭐라고. 아니, 이젠 인간이라 하기도 애매하지 않나?”

 

 에노코가 불만을 하소연하는 사이, 마리사는 녹차를 대접하면서 말했다.

 

 “흠, 그렇다면 에노코는 두목이 나를 죽이라고 하면 바로 죽일 거야?”

 “....... 갑자기 뭔 질문이 그래? 타당한 이유가 있다면 따라야겠지. ……. 아니, 음…….”

 “너와 나의 인연은 기껏해야 내가 아주 어려서 제대로 기억도 못할 때 숲에서 헤매던 나를 다른 요괴로부터 잠깐 지켜준 것, 그리고 반대로 이번에 네가 굶주리면서 쓰러져 있을 때 내가 허기를 때울 음식과 쉴 곳을 제공한 것, 이렇게 두가지 정도잖아. 그런데도 너는 나를 해치라는 명령을 가정했을 때 망설였어.”

 “그건 서로 나름 은인이니까 도리를 다 하는 거잖아?”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도리나 의무와 인연의 감정은 다른 거니까. 우리의 짧은 인연도 이렇게 큰 영향을 주는데 쿠로코마와 그 태자의 생전 인연은 짧아도 십수년이잖아. 그렇다면 쿠로코마 입장에서 미코 성인은 아무리 세월이 흘렀어도 상당히 중요한 사람이겠지.”

 “그, 그렇다 해도 조직의 두목이 조직을 내팽개치면 안되지! 옛날에는 그렇다 쳐도 지금은 우리들의 두목인 걸!”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그렇겠지만 보통은 감정이 더 앞서니까. 지금 다시 이야기해보면 말이 통하지 않을까?”

 “그럴…까?”

 “에노코!”

 

 갑자기 밖으로 통하는 문이 활짝 열렸다. 거기에는 검은 두 날개를 한 카우보이, 쿠로코마 사키가 서 있었다. 에노코는 갑작스런 두목의 등장에 놀라 식탁에서 일어났다.

 

 “두목…….”

 “에노코, 몸은 괜찮아?”

 “....... 응, 키리사메 양이 먹을 것도 주고 회복하는 걸 도와줬어.”

 “그렇군. 고마워, 인간 마법사.”

 “별 말씀을.”

 “에노코, 저번에는 진짜 미안했어. 다 맞는 말이었는데 내가 괜히 화를 낸 거였어.”

 “....... 흥, 미안한 건 아는구만. ……. 저도 두목의 옛 주인에 대해 험담해서 죄송합니다.”

 “에노코…….”

 “경사로세, 경사로세! 자, 둘이 잘 화해했으니까 슬슬 돌아가지 그래.”

 

 그렇게 두 축생계 요괴는 마리사의 집을 떠나 자신들의 보금자리로 향했다. 마리사는 그들을 배웅하고 집 안을 둘러봤다. 집 안에는 흰색 개털과 검은색 깃털, 검은색 말털이 한가득 이었다.

 

 “아오, 청소 또 처음부터 다시 해야겠네.”

 

 

요리편 : 연근 돼지고기말이

 

출처 : <요리 초보자도 맛있게 만드는 일본 가정식 260>, pg. 89

 

재료 (원본 레시피 4인분 기준) :
- 돼지고기(우둔살, 얇게 저민 것) 300g → 돼지고기 앞다리살 불고기용

- 연근(큰 것) 2개(400g) → 연근조림 만든 후 남은 것을 써서 정확한 양 모름

- 밀가루(적당량) → 부침가루

- 식용유 1.5큰술

- 검은깨 1작은술 → 누락

 

양념장 : 

- 간장 2.5큰술

- 청주 2큰술

- 설탕 2큰술

- 맛술 1큰술

 

조리법

① 연근의 껍질을 벗겨 8mm 두께로 통썰기를 한다. 물에 5분 동안 담갔다가
    4~5분 정도 삶아낸 후 물기를 뺀다. → 이미 손질되어 있던 재료 사용했습니다.

② 돼지고기는 한 장을 세로로 펴서 통썰기한 연근을 한 조각 올려 돌돌 만다.
    나머지도 같은 방법으로 말아준다. 남은 연근은 따로 담아둔다. → 남은 연근이 없었습니다.
③ 돼지고기에 얇게 밀가루를 뿌린다. 식용유를 둘러 달군 후라이팬에 올려
    중간 불에서 양면을 굽는다.

④ 키친 타올로 후라이팬에 여분의 기름을 닦아내고 물 1/2컵과 양념장, 남은 연근을 넣어
    중간 불에서 4~5분 정도 조린다. 어느 정도 조린 후 그릇에 담고 조림국물을 끼얹은 다음
    돼지고기말이에 검은깨를 뿌린다.
    → 남은 연근이 없어서 그대로 따로 조렸습니다. 국물을 부으려니 부적합한 그릇에 담은 나머지
          따로 찍어먹을 수 있도록 별도의 그릇에 담았습니다. (이 부분은 안 좋은 판단입니다.)
          검은깨는 없어서 뿌리지 않았습니다.



요리 후기 : 

 

 어릴 때부터 집에서 종종 연근 조림을 먹었기에 쓰고 남은 연근을 그대로 해당 요리에 사용했습니다. 또한 상대적으로 구하기 쉬운 돼지고기 앞다리살 불고기용을 사용하여 연근을 얇은 고기로 둘둘 말았습니다. 이렇게 본 레시피를 잘 안 따라가다보니 연근 분량이 모자라서 조림국물을 조리하는 데에 다소 헤멨습니다.

 

 위와 같은 레시피 미준수 때문에 비록 맛있었지만 애매하다고 여겨지는 결과물이 나왔습니다. 앞선 소설 내용에서 실제로 요리한 것과 달리 양념장을 본 요리와 같이 조렸다고 묘사한 것도 그렇게 대처하는 것이 더 맛있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입니다. 실은 조건만 갖춰진다면 레시피대로 조리하는 것이 가장 좋긴 합니다. 이 요리는 특히 그렇게 하기를 제안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