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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파] 환상향견문록/화식파 마리사의 가정식

5월 : 니쿠자가(소고기 감자조림)

by 판타스웜 2024. 9. 9.

5월 : 니쿠자가(소고기 감자조림)

 안개가 자욱한 호수 안 섬에는 붉은 서양식 저택이 있다. 크기만 보면 저택보다는 작은 성채에 가깝다고 느낄 정도지만 아무튼 건물 구조를 보면 의외로 깔끔하고 단순한 장식으로만 꾸며져 있는 양식 저택이다. 보통은 저택을 둘러싼 담벼락의 문지기는 붉은 머리를 한 요괴지만 이 날은 평소와 다르게 홉고블린들이 문을 지키고 있었다. 흑백의 마법사도 평소와 달리 몰래 담벼락을 넘어가지 않고 정문을 넘어 저택 안으로 들어갔다. 마리사가 들어가서 도착한 곳은 홍마관의 대도서관, 그 곳에는 사서 파츄리 널릿지가 평소와 달리 기묘한 마법 기구를 손보고 있었다.

 “여어, 파츄리! 연락한 대로 약을 가지고 왔어.”
 “으악! 깜짝이야. 넌 왜 정식으로 초대했는데도 도서관으로 들어오는 거야?”
 “아무래도 버릇이 되어서 말이야. 게다가 이 약을 네가 한번 더 손을 봐야 한대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참나…….”

 파츄리는 마리사가 들고 있던 약을 가로채서 책상 위에 있는 마법 기구의 정 중앙 무중력 공간에 놓았다. 파츄리가 마리사도 모르는 언어로 주문을 외우더니 마법 기구의 룬이 빛나면서 약병이 허공에서 회전하면서 무언가가 빠져나갔다. 마리사는 신기하다는 듯한 눈빛으로 기계를 쳐다보면서 파츄리에게 물었다.

 “방금 그거, 뭘 한 거야? 이 기구 이름이 어떻게 돼?”
 “이름은 저주 추출기. 본래 목적은 물건에 깃든 각종 저주를 빼내는 데에 쓰이는데 말이 그렇고 실제로는 마법과 주술 주문을 추출하는 게 주 목적이야. 이게 만들어졌을 당시에는 저주와 여타 주문을 똑부러지게 구분하지 않았으니까. 방금 추출한 건 약에 깃들어 있는 동양 주술 주문을 하나 뺀 거야. 영혼과 기운을 현세에 묶어두는 주문인데, 보통 인간에게는 이롭지만 사쿠야의 이능에는 해로우니까 빼낸 거지.”
 “오오, 파츄리, 나도 이거 쓰는 법 알려주면 안돼?”
 “안 돼. 함부로 가져갈 생각도 하지 마. 마계에서 직접 만든 거니까.”

 파츄리는 약병을 추출기에서 꺼내 마리사에게 건네준 후, 추출기를 조수인 소악마에게 넘겼다. 다시금 책을 집어든 파츄리는 추출기에 눈을 못 떼는 마리사를 힐끔 보더니 한숨을 내쉬었다.

 “사쿠야가 잘 낳으면 나중에 기본적인 사용법을 알려줄게. 단, 저 추출기는 절대 가져갈 생각하지 마. 나중에 앨리스한테 졸라서 사든가 아니면 인간계에서 만든 저렴한 걸 사든가..”
 “그럴 수도 있구나! 고마워, 파츄리.”
 “....... 사쿠야가 아프다니까 얼른 가봐. 사쿠야의 몸이 아무리 튼튼하다 해도 병들어서 아픈 건 다른 사람과 같으니까.”

 마리사는 요정 메이드들의 안내를 받아 대도서관을 나와 평소보다 짧게 느껴지는 복도를 지나 사쿠야의 침실로 안내받았다. 요정이 노크를 하자 문이 열렸고, 안에는 본래 문지기인 홍 메이링이 있었다.

 “어서 와. 약은 준비됐어?”
 “응, 파츄리가 저주 추출기로 문제 되는 주문을 빼냈다고 했으니까 이걸 먹이기만 하면 될 거야.”
 “좋아. 레밀리아 님, 그러면 약을 투약하겠습니다.”

 방 안에 당주의 여동생 플랑도르와 함께 있던 홍마관의 당주 레밀리아 스칼렛은 고개를 끄덕이자, 메이링이 침대에 누워 있는 사쿠야의 입을 벌려 약병의 내용물을 넣었다. 거칠게 호흡하던 사쿠야의 호흡은 점점 안정을 되찾았다. 레밀리아는 사쿠야의 몸에 손을 올려 무언가를 탐지하는 듯 했다. 사쿠야가 괜찮아졌다고 판단한 레밀리아는 마리사에게 부탁했다.

 “마리사 양, 복도가 다시 넓어졌는지 봐줘.”
 “아, 응.”

 마리사가 다시 문을 열고 복도를 바라보니 확실히 이전보다 간격이 넓어져 있었다. 천장도 높아진 복도에서는 이제 요정 메이드들이 자유롭게 날아다니기 시작했다. 마리사는 문을 다시 닫고 알렸다.

 “넓어졌는데, 사쿠야는 그럼 괜찮은 건가?”
 “일단 독감은 나았지만 그래도 회복하는 시간은 필요할 거야. 얼마나 걸릴지는 잘 모르지만 그래도 내일 아침이면 회복할 거야.”
 “언니, 그러면 오늘 저녁은 누가 요리하는 거야?”

 플랑도르의 질문에 아무도 대답하지 않다가 메이링이 입을 열었으나 레밀리아가 단칼에 잘랐다.

 “역시 이번 요리는 제가-”
 “한 끼 정도는 굶어도 괜찮지 않을까? 우리들이야 굶는다고 딱히 생존에 문제가 되는 것도 아니고.”
 “에? 언니, 아무리 메이링 음식이 먹기 싫어도 그렇지 굶을 필요까지는 없잖아?”
 “그것보다 메이링 요리 잘 못해? 잘하는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마리사는 예전에 메이링의 중화요리를 먹어본 적이 있는데 맛있었기에 레밀리아의 반응이 의외라 여겼다. 레밀리아는 짜증나는 표정을 지었다.

 “메이링 녀석, 요리할 때마다 툭하면 마늘 넣으니까.”
 “하지만 그 마늘로 맛을 내야 하는 걸요!”
 “그러니까 안 먹는다고!”
 “요정 메이드들과 홉고블린들에게 요리 맡기면 되는 거 아냐? 나는 고기 먹고 싶다고!”
 “걔네들 요리를 먹을 바에 굶는 게 낫다!”
 “거 다들 시끄럽네요, 잠 좀 자고 싶은데…….”

 방이 계속 시끄럽자 결국 침대에 누워 있던 메이드가 깨어났다. 아직 제대로 몸을 일으키지는 못한 채 말만 했다.

 “마리사도 거기 있지?”
 “응, 몸은 괜찮아?”
 “네가 요리하라.”
 “뭐?”
 “네가 요리하라고. 마늘은 확실하게 빼고. 양파는 괜찮아.”
 “갑자기 요리를 하라 해도 부엌이 어딨는지도 모르는 걸.”
 “자세한 건 메이링이 알려줄 거야. 그럼 다시 잔다. 당주님, 실례하겠습니다.”
 “아, 그래. 흠, 원래 손님에게 요리를 부탁하는 건 예의에 어긋나지만 상황도 상황이고, 레이무가 네 요리에 대해 높게 평가하니까 기대가 되긴 하는구나. 메이링, 너는 마리사에게 부엌을 안내해주고나서 다시 문을 지키러 가. 아무리 홉고블린들이 너보다 성실해도 집행력은 믿음이 안가니까.”
 “네…….”

 메이링은 오랜만에 요리를 하고 싶었는지 시무룩해진 것 같다. 그래도 당주의 명령을 따라 마리사를 부엌으로 안내해주었다.

 “보이는 대로 요리기구와 각종 도구가 있고, 저쪽 캐비넷에 식재료가 있어. 뭔가 부족하다 싶으면 이 두 홉고블린들에게 부탁을 하면 최대한 맞춰줄 거야. 그리고… 어지간해서는 요정들에게는 부탁하지마. 사쿠야가 부리면 뭐라도 좀 하지만 그래도 요리는 결국 못 하더라고.”
 “알겠어, 고마워. 근데……. 홍마관에서 요리는 어떤 걸 해야 좋지?”
 “레밀리아 당주님과 플랑도르 아가씨에게 맞추면 되는데, 아가씨는 딱히 편식은 안 해서 상관 없고, 결국 당주님 입맛에 맞춰야지. 기본적으로 양식을 선호하시지만 대충 비슷한 맛에 좀 더 달짝지근한 맛이면 충분해. 마늘은 당주님과 아가씨 모두 드실 수는 있지만 싫어하시니까 빼고, 어지간해서 쓸 일은 없겠지만 투구꽃은 진짜 넣으면 안 돼.”
 “흠, 그러면 니쿠자가면 될까? 아, 니쿠자가가 뭐냐면-”
 “나도 뭔지 알아. 너보다 바깥세계에 대해 더 많이 알거든?”
 “엥? 이게 바깥세계랑 뭔 상관인데?”
 “메이링님, 당주님께서 얼른 교대하라고 하십니다!”
 “이런, 나중에 이야기해줄테니까 일단 가볼게! 그러면 잘 부탁해!”

 메이링은 어느 새 부엌에서 사라졌고, 마리사는 두 홉고블린과 어색하게 남아 있었다. 마리사는 본격적으로 니쿠자가, 소고기 감자조림을 요리하기 시작했다.

 감자와 당근, 양파를 먹기 좋게 썰어준다. 어디까지나 당근과 양파는 맛을 좀 더 내주는 용도이기에 감자보다 적게 준비한다. 소고기도 먹기 좋게 얇게 저밀어서 준비한다. 냄비를 준비하여 기름을 두르고 고기를 볶는다. 고기가 다 익어가면 나머지 야채를 넣은 후 기름에 버무려질 정도로 볶은 후 물, 설탕, 간장, 미림을 넣는다. 약한 불로 보글보글 끓이면서 양념물이 쫄고 감자와 당근이 쉽게 으스러질 정도까지 익힌다.

 마리사는 요리가 다 끝났다 싶었지만 홉고블린이 어슷썰기한 아스파라거스와 소량의 버터를 가져왔다.

 “이건 또 뭐야?”
 “아스파라거스와 버터입니다요.”
 “아니, 그건 나도 알고. 이걸 넣어보란 거야?”
 “네, 아스파라거스는 밑 쪽에 밀어넣고 버터는 알아서 열기로 풀리게 하면 됨다.”
 “흠, 나쁘지는 않겠어. 고마워. 그런데……. 니쿠자가가 바깥 세계에서 흔한 음식이야?”
 “일본에서는 자주 먹는다는데요? 홍마관이 원래 있던 곳에서는 보통 부르기뇽을 먹었지만요.”
 “여태껏 집에서 내려온 요리라고 생각했는데……. 아무튼 조금만 있다가 식탁 차려주는 걸 도와주고 홍마관 식구들을 불러줘.”
 “알겠슴돠. 식탁 차리는 것은 요정 메이드들이 도와드릴 것임돠.”

 저녁 식사 시간이 되자 홍마관의 드넓은 다이닝 홀에 각종 빵과 잼, 구운 고기와 생고기, 치즈와 와인이 차려져 있었다. 그리고 그 중에서 눈에 띄게 니쿠자가가 각자의 자리에 차려져 있었다. 다이닝 홀에는 두 흡혈귀 귀족은 물론, 붉은 머리의 문지기, 방구석 마법사와 그의 조수 소악마, 그리고 평소에 못 봤던 여러 소악마, 인간 하녀와 집사들도 보이기 시작했다. 마리사는 생각보다 많은 식객을 마주하자 다소 당황했다.

 “홍마관이 마을에서 나간 인간 중 일부를 하수인으로 거둔다는 이야기는 들었는데, 저 소악마 베리에이션들은 뭐야?”
 “베리에이션이라니, 다들 소악마지. 설마 소악마가 내 조수 이름이라도 되는 줄 알았어?”
 “그러면 조수 이름이 뭔데?”
 “그건-”
 “자, 모두 주목!”

 파츄리가 비밀을 공개하려던 찰나, 레밀리아 당주가 말을 끊으며 모두에게 짧은 연설을 했다.

 “최근 우리 홍마관의 메이드장 이자요이 사쿠야가 인간 마을에서 돌던 독감에 전염되면서 큰 고생을 했다. 마을에 치료제가 풀렸고 오늘의 손님, 흑백의 마법사 키리사메 마리사가 가져다줘서 다행히 메이드장은 무사하고 지금 쉬면서 회복 중이다. 게다가 오늘 메이드장의 공백을 메꿔주기 위해 손님으로 온 키리사메 마리사가 요리를 해주었으니, 모두 감사를 표하며 맛있게 즐기도록.”

 모두가 제각각 감사를 표시하고 먹기 시작하자, 다들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으며, 어느샌가 다른 먹거리에 비해 니쿠자가는 금방 사라졌다. 플랑도르는 특히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와, 진짜 너무 맛있다! 고기가 좀 더 많았으면 좋으련만.”
 “식탁에 고기 많이 있잖아. 거기에 양념을 좀 부어먹어봐. 그나저나 레밀리아, 니쿠자가가 원래 바깥 세계 요리야? 난 여태껏 우리 집에서 내려오던 레시피인 줄 알았는데.”
 “뭐, 하쿠레이 대결계 이후 요리이긴 할텐데, 얼마 안 되어서 환상들이한 외래인이 퍼뜨렸을 수도 있지. 요리가 등장한 시기도 큰 전쟁이 일어나기 전이거나 그 와중일 테니까.”
 “그렇구나…….”

 마리사는 잠시 회상에 잠겼다. 실은 이 요리는 키리사메 가문에서 전해 내려왔다고 하기엔 애매한 요리다. 정확히는 마리사가 아주 어릴 때 할아버지께서 며느리, 즉 마리사의 어머니를 회상하면서 요리해주었던 것이다. 할아버지 말에 의하면 마리사가 태어난 직후 세상을 떠난 어머니는 바깥 세계에서 왔다고 한다. 그 때 어머니가 할아버지에게 대접했던 요리가 니쿠자가였고, 어머니의 맛을 마리사에게도 알려주기 위해 할아버지가 굳이 잘 하지도 않는 요리를 했다고 한다. 지금은 할아버지도 어머니를 따라 떠났고 할아버지와의 연결고리는 이 요리만이 남았다.


요리편 : 니쿠자가(소고기 감자조림)

출처 : 만개의레시피 - 니쿠자가(にくじゃが) 만들기
링크 : https://www.10000recipe.com/recipe/6839856

재료 (원본 레시피 2인분 기준) : 
- 감자 2개
- 양파 1/2개
- 아스파라거스小 4개 → 당근 감자 분량의 1/3
- 소고기(불고기용) 120g
- 물 350g

양념류 : 
- 진간장 50g
- 설탕 2 테이블 스푼
- 미린 50g
- 버터 10g → 넣지 않음

조리법
① 감자는 한입 크기로 썰기, 양파는 채썰기, 아스파라거스는 어긋썰기를 한다.
    → 아스파라거스를 당근으로 대체하면서 당근도 감자처럼 한입 크기로 썬다.
② 키친타올 위에서 불고기감은 혹시나 나오는 핏물을 제거중 한입크기로 썰어서 준비한다.
③ 냄비에 오일을 두른 후 고기를 볶아 고기가 익어갈 쯤 아스파라거스를 제외한 야채를 넣고
    오일 코팅이 될 정도로 볶는다.
④ 버터를 제외한 양념류와 물을 넣고 감자가 다 익을 때까지 중약불로 양념물을 오랫동안 졸인다.
⑤ 아스파라거스는 감자가 다 익었을 때 넣어서 밑 쪽으로 밀어넣어 양념이 베게 한다.
⑥ 양념에 베었을 때 쯤 버터를 한 쪽에 넣고 불을 끄고 살짝 식힌다. → 뜨거운 것도 맛있습니다.


요리 후기 : 

 제가 했던 요리 중 가장 맛있고 만족스러웠던 요리입니다. 다만 맛있는 것과 별개로 앞서 이야기에서 볼 수 있었듯이 환상향에 토박이인 마리사가 요리하는 것으로 어떻게 등장시킬지 고민을 할 수 밖에 없는 요리긴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에서 많이 먹는 것으로 유명한 요리이긴 해서 어떻게 이런 스토리로 넣어봤습니다. 시간이 좀 걸리는 요리긴 하지만 분명 해먹을만한 가치가 있으니 꼭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