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알파] 환상향견문록/화식파 마리사의 가정식

9월 : 갈릭버터 버섯

by 판타스웜 2024. 9. 28.

9월 : 갈릭버터 버섯

 바깥 세계는 지구온난화로 인해 아직 좀 더 더울 무렵, 환상향의 숲은 가을 기운이 점점 차오르고 있었다. 뜨거운 열기는 선선한 바람으로 날아갔고 숲 속에서는 풍요로움이 깃들고 있었다. 버섯을 애용하는 숲 속의 마법사 키리사메 마리사는 가을이 다가오면 늘 그렇듯이 마법의 숲에서 각종 버섯을 채집하고 있었다. 마리사의 물약 제조에 쓰이는 버섯들은 주로 마법의 숲에서 자라는 특별한 마법 버섯들이지만, 나름 인간 마을에서도 잘 팔리는 식용 버섯도 많이 따는 편이다. 마리사의 바구니는 풍족했지만 영 만족스럽지 못한 표정이었다.

 “역시 아직은 마법 버섯이 덜 자랐구나. 일단 지도에 위치는 다 기록했고, 먹거리용 버섯만 한 가득이네. 몇개 질 좋은 건 인간 마을에 팔면 좋겠고……. 그러고보니 나루미나 보러 갈까? 나루미가 버섯을 좋아하긴 하니까. 고기 대신 먹는 것이긴 하지만 말이야.”

 마리사가 마법의 숲 속 드물게 있는 오솔길을 따라가자 길 가장자리에 지장보살상이 있었다. 이 지장보살상이 특이한 점은 돌로 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살아움직인다는 것이다. 지장보살상 야타데라 나루미는 단풍의 신 아키 시즈하, 풍년의 신 아키 미노리코와 함께 있었다. 마리사는 뜻밖의 손님에게 말을 걸었다.

 “뭐야, 가을 신님들이 왜 이 마법의 숲에 있는 거야? 농부들은 너희들을 기다리고 있을텐데.”
 “도둑 마법사로구나. 꼭 그렇지는 않단다. 본격적인 수확철은 한두달 후부터고, 좀 이르게 수확하는 작물들은 이미 다 수확을 했고, 그래서 이 마법의 숲에서 쉬고 있는 것이지.”
 “그래서 버섯들이 많이 자란 건가? 하지만 마법 버섯들은 하나도 안 자랐는 걸.”
 “마법 버섯 같은 게 풍년이랑 무슨 상관이야?”
 “그나저나 마리사, 바구니 안에 버섯 보니 오늘 저녁 안줏거리로 안성맞춤일 것 같은데?”

 미노리코와 마리사의 대화에 지장보살상 나루미가 끼어들었다. 미노리코는 불상의 술에 대한 식탐을 보고 어이없어 한다.

 “자네 나름 그래도 부처의 가르침을 따르는 자이거늘!”
 “흥, 내가 원해서 불상으로 태어난 것도 아닌걸.”
 “언니, 우리도 술자리에 끼는 건 어때? 마리사의 요리가 기대되긴 하는데.”
 “시즈하, 너마저도…….”
 “그것보다 내가 요리한다고 한 적이 있나?”

 마리사는 두 신과 하나의 불상이 제멋대로 이야기를 하는 것을 듣다가 말했다. 의외의 질문에 나루미는 바구니를 보면서 되물었다.

 “그 버섯 그럼 안줏거리가 아닌 거야?”
 “그야 두세송이 정도만 적당히 구워먹자고 하려고 했지. 대부분은 인간 마을에 팔 거라고.”
 “뭐야, 그럼 결국 요리하는 거네. 이번에도 기대할게!”
 “그 정도를 요리라 해도 되나?”
 “에헴, 마리사 양, 혹여 실례가 안된다면 나와 여동생도 자네들의 술자리에 합석해도 괜찮은가? 필요하다면 식비를 지불할 의향도 있네.”
 “뭐, 그러면 둘이 먹을 버섯 비용 정도만 내주면 좋겠는데, 근데 신앙심도 잘 안모이는 것 같은데 돈은 충분히 있는 거야?”
 “무슨 소리예요?! 확실히 신앙심은 별로 안 모여도 풍년을 비는 새전은 아주 잘 모인답니다!”
 “뭔가 그건 그거대로 슬픈데……. 알겠어. 오늘 저녁에 우리 집으로 놀러와.”

 그날 저녁, 점점 어두워지는 마법의 숲 속에서 마리사의 집만이 빛을 발하고 있었다. 창문으로부터 따뜻한 빛과 온기가 발하였는데, 멀리서부터 고소한 구이의 냄새가 났다. 아키 자매는 냄새를 따라 마리사의 집 문 앞까지 다다르자 노크를 했다. 마리사 대신 먼저 온 나루미가 문을 열어 식탁으로 안내하자, 식탁에는 이미 맥주 잔 4개와 소형 맥주 배럴 통이 놓여있었다. 마리사는 낮에 수확한 새송이버섯으로 간단한 구이 요리를 하고 있었다.

 먼저 새송이버섯을 세로로 얇게 썰어준다. 그리고 팬에 버섯을 올려서 그대로 구워준다. 버섯이 잘 구워지면 잠깐 빈 접시에 치운 후 구운 버섯에 간장을 살짝 발라준다. 간장이 버섯에 골고루 묻혔으면 버터를 팬에 두른 후 버섯을 얇게 썬 마늘과 같이 넣어 조금 더 볶는다. 충분히 볶았다 싶으면 덜어서 접시에 놓으면 갈릭버터 버섯이 완성된다.

 “자, 갈릭버터 버섯 완성이요. 안주도 준비되었으니 다들 마시자고.”
 “오, 잘 만들었구만. 잘 먹겠네. 여기 버섯 값이네.”
 “뭐야, 진짜로 주는 거야? 그럼 잘 받을게. 맥주는 편하게 마셔.”
 “그리고, 이건 마을 농부들이 수확물로 만든 포도 와인. 맥주가 끝난 다음에 같이 마시게나.”
 “너희들, 오늘 밤 중으로는 각자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본격적으로 술잔에는 술이 차올랐다가 꺼지고 접시 위의 버섯의 개수는 점점 줄어들기 시작했다. 말이 별로 없던 시즈하는 마리사에게 물었다.

 “그런데 마리사, 나루미한테는 따로 뭐 받을 생각이 없던 거 같은데 나루미한테 특별히 이렇게 챙겨주는 이유가 있는 거야? 아, 딱히 돈을 냈다고 불만인 건 아니고.”
 “그야……. 나루미는 앨리스와 파츄리 이후로 오랜만에 만난 마법사 친구이고, 무엇보다 나루미 녀석 불상의 성격 때문에 평소에는 혼자서 조용히 그 오솔길을 지키는데 결국 쓸쓸할 때도 있을 거니까…….”
 “마리사, 너…….”
 “저 자식, 웃기고 있네! 내가 종종 네 신규 마법 피실험체 노릇하는 거 돈 대신 이런 걸로 때우는 거면서!”
 “윽, 나루미, 이 자식, 괜히 한번 분위기 잡아봤는데 그걸 바로 말하면 어떡해!”
 “어휴, 기대한 내 잘못이지.”

 마리사와 나루미의 만담 아닌 만담이 오고가는 사이, 미노리코가 와인 병을 따면서 빈 맥주 잔에 와인을 조금 따르면서 말했다.

 “그 피실험체, 나루미보다는 앨리스가 낫지 않은가? 마법에 대한 지식 자체는 앨리스가 더 많을 터인데.”
 “피실험체는 마법에 대한 지식보다는 마법에 대한 내성이 더 중요하니까. 그리고……. 앨리스가 심하게 다친다면 마계에서 엄청난 손님들이 들이닥칠 수도 있거든.”
 “엄청난 손님들이라니…….”
 “맞다, 미노리코. 궁금한 게 있는데 요즘 환상향의 가을도 점점 뒤로 미뤄지고 있는 것 같은데 그런 현상이 너희들에게 영향은 없어?”

 미노리코는 마리사의 생각보다 무거운 질문에 잠시 와인이 담긴 맥주잔을 바라보다가 답했다.

 “일단 나는 엄밀히 따지면 풍년의 신이니까 결국 작물의 풍년에 대한 인간들의 기도가 모이면 충분하다네. 의외로 여름에 수확하는 작물도 많으니까 말이야.”
 “그렇구나. 그러면 시즈하는?”
 “그게……. 일단은 그래도 가을이 사라진다기 보다는 뒤로 밀린다는 느낌이긴 하지만 그래도 인간이 체감하는 것은 또 다른 일이라서 말이야.”
 “체감하는 것은 다른 일이라고?”
 “실제 가을의 기간이 줄어드는 건 아니지만 인간들은 줄어든다고 체감한다는 것이지. 이게 신앙과 기도에 영향을 주는 것이고.”

 살짝 취한 듯한 시즈하가 도중에 끼어들었다. 시즈하는 불만을 품은 듯이 궁시렁대기 시작했다.

 “아무리 이야기를 해봐도 결국 바깥 세계의 외래인들이 ‘지구온난화 때문에 봄과 가을이 줄어든다.’ 같은 소리를 계속 하니까 내 말을 듣지를 않아. 뭐가 ‘봄여어어어름갈겨어어어울’이야? 시나노 근처에서 살지도 않던 놈들이……. 딸꾹!”
 “얘, 왜 이렇게 벌써 취했대? 술에 약하다는 이미지는 아니었는데.”
 “아, 시즈하 녀석, 또 혼자서 폭주했나보네. 그 맥주통 아예 비었는가?”
 “앗, 진짜네. 나름 꽤 남았었을 텐데.”
 “에휴. 동생이랑 나는 이만 가보겠네. 민폐끼치고 싶지는 않으니까.”
 “그래, 오늘 재밌었어. 다음에 기회가 되면 또 마시자고.”
 “언제였지? 11월에 외래인 농부들이 추수감사절을 지낸다니까 그 때 놀러오게나. 그 때 마실 와인은 더 고급이라니까.”

 미노리코는 시즈하를 업고 마리사의 집을 떠났다. 마리사는 마저 배웅 인사를 한 다음에 나루미가 있는 식탁으로 돌아갔다. 나루미는 창문 밖으로 아키 자매가 멀리 간 것을 보고 입을 열었다.

 “역시……. 시즈하 녀석 사라질 수도 있으려나.”
 “사라진다니? 그게 무슨 말이야?”
 “그거 있잖아. 신앙을 완전히 잃어버린 신은 인간으로 되돌아가거나 생명의 법칙에 따라 일반 영혼이 되어 명계로 떠나는 거.”
 “그렇긴 한데……. 시즈하가 그 정도로 위태로운가?”

 마리사는 나루미가 말한 신이 ‘죽는’ 과정에 대해 책에서 본 적이 있다. 하지만 아직 인간 소녀인 마리사에게는 잘 와닿지 않는 이야기였다. 나루미는 마저 말을 이었다.

 “시즈하가 진짜로 ‘가을의 신’이면 그냥 기우에 불과하지만, 엄밀히 따지면 ‘단풍의 신’이니까. 엄밀히 따지면 가을에 대한 인식이 중요한 게 아니라 지금 환상향의 단풍이 지는 나무가 모두 사라지면 단풍에 대한 인간들의 신앙이 대폭 사라질 것이고, 그러면 시즈하는 위태로워지는 것이지.”
 “하지만 단풍나무들이 갑자기 사라질 리가 없잖아?”
 “갑자기는 안 사라져도 서서히 줄어들 수도 있는 것이고, 단풍이 지지 않는 환경으로 변할 수도 있는 것이고, 극단적인 생각이지만 악의를 가지고 환상향 내 단풍나무를 모두 베는 정도는 집단 차원으로는 가능할 것이고…….”
 “에이, 설마. 시즈하에게 악의를 가질 사람이 누가 있다고?”
 “뭐, 그렇긴 하지.”

 무거운 주제 때문에 묘하게 찝찝한 정적이 흐르자 마리사는 다시 분위기를 밝힐 거리를 생각하다가 사나에에게 들은 모리야 신사의 계획이 떠올랐다.

 “그런데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아. 모리야 신사의 카나코와 스와코도 신앙심을 모으는 주제를 바꾼 적도 있으니까 정 안되면 시즈하도 그렇게 바꾸면 되겠지.”
 “체급이 된다면 그렇게 할 수 있겠지만……. 맞아, 어차피 그 두 신이랑도 친하게 지내는 사이라니까 알아서 도움을 받겠지.”

 나루미는 마리사의 의도를 알아채고 일단 분위기를 바꾸는 데에 동참했다. 하지만 미묘한 무거운 기운은 쉽사리 사라지지 않았다. 아무튼 밤이 점점 기울자 나루미도 자신이 원래 있어야 하는 위치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마리사의 집에서 더 이상 불빛은 보이지 않게 되었지만, 마리사는 좀처럼 빨리 잠들지는 못했다.


요리편 : 갈릭버터 버섯

출처 : 만개의레시피 - 초스피드!!!일본 이자카야 맛!!가리바타 버섯!!(ガリバタきのこ)
링크 : https://www.10000recipe.com/recipe/6900119

재료 (원본 레시피 2인분 기준) : 
- 새송이버섯 2~4개
- 버터 10g
- 간장 1큰술
- 마늘 2~4톨

조리법
① 버섯을 세로로 얇게 자르고 굽는다.
② 버섯이 잘 구워지면 간장, 버터, 썰은 마늘을 넣고 더 볶는다.
    → 가능하면 버섯에 따로 간장을 버섯에 골고루 발라서 볶는 것이 낫습니다. 
         별 생각 없이 간장을 넣으면 간장이 제대로 퍼지지 않아서 간을 골고루 맞출 수 없습니다.
         (그냥 구워먹는다 생각하면 간장 대신 소금을 골고루 뿌리는 것도 방법이긴 합니다.)


요리 후기 : 

 소설 부분에서는 마치 쉬운 요리인 듯이 썼지만 요리 초보자인 제 생각에는 초보자 입장에서 함정이 여럿 있는 생각보다 어려운 요리입니다. 그냥 소금을 골고루 뿌려서 굽는 새송이버섯 구이와 달리 간장의 경우 아무 생각없이 한술 떠서 뿌리면 간이 골고루 베지 않고 그대로 열기에 의해 쫄아들 가능성이 높습니다. 실은 저도 이렇게 해서 요리를 실패한 케이스입니다. 나중에는 각잡고 다시 해볼 때는 한번 구운 버섯에 간장을 따로 바르는 것이 낫겠다 싶습니다.

 

'[알파] 환상향견문록 > 화식파 마리사의 가정식' 카테고리의 다른 글

11월 : 계란찜  (1) 2024.09.30
10월 : 사과 카레라이스  (4) 2024.09.29
8월 : 블루베리 요거트  (7) 2024.09.27
7월 : 낫토덮밥  (2) 2024.09.26
6월 : 오이와 통깨무침 소바  (2) 2024.09.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