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키리사메12

6월 : 오이와 통깨무침 소바 6월 : 오이와 통깨무침 소바  요괴의 산 강가의 어느 공터, 평소에는 아무도 없을 만한 곳에 긴 탁자가 있었다. 탁자를 둘러싼 두 무리의 요괴들이 서로를 마주하며 대치 중인데, 얼핏 보기에는 두 요괴가 같은 부류처럼 보인다. 둘은 같은 형태의 드레스를 입고 있었으나, 한 쪽은 파란색, 한 쪽은 얼룩 위장 무늬였다. 겉으로 보기에는 귀염귀염한 소녀들처럼 보였지만 막상 탁자에서 오가는 이야기는 복잡하고 무거운 이야기였다. 탁자에서 다소 떨어진 곳에서는 이들의 시중을 드는 몇몇 인간들이 간단한 요리 기구와 요리 재료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는 흑백의 마법사, 키리사메 마리사도 있었다.  이 두 갓파 종, 카와야로와 야마와로가 회담을 하는 데에 마리사가 엮이게 된 경위는 며칠 전 갓파들의 바자르에서 .. 2024. 9. 11.
5월 : 니쿠자가(소고기 감자조림) 5월 : 니쿠자가(소고기 감자조림)  안개가 자욱한 호수 안 섬에는 붉은 서양식 저택이 있다. 크기만 보면 저택보다는 작은 성채에 가깝다고 느낄 정도지만 아무튼 건물 구조를 보면 의외로 깔끔하고 단순한 장식으로만 꾸며져 있는 양식 저택이다. 보통은 저택을 둘러싼 담벼락의 문지기는 붉은 머리를 한 요괴지만 이 날은 평소와 다르게 홉고블린들이 문을 지키고 있었다. 흑백의 마법사도 평소와 달리 몰래 담벼락을 넘어가지 않고 정문을 넘어 저택 안으로 들어갔다. 마리사가 들어가서 도착한 곳은 홍마관의 대도서관, 그 곳에는 사서 파츄리 널릿지가 평소와 달리 기묘한 마법 기구를 손보고 있었다.  “여어, 파츄리! 연락한 대로 약을 가지고 왔어.”  “으악! 깜짝이야. 넌 왜 정식으로 초대했는데도 도서관으로 들어오는 거.. 2024. 9. 9.
4월 : 봄 양배추와 두부 미소장국 4월 : 봄 양배추와 두부 미소장국  인간 마을은 약 1만명이 거주하는 작다면 작고, 크다면 큰 곳이다. 마을 단위의 자급자족을 위한 여러 공방과 기술자가 존재하긴 하지만 여전히 다수의 사람들이 농업에 종사하기에 오전에는 유독 사람이 적어보인다. 그나마 마을 중앙에 다다르면 아침부터 개점하는 각종 고급점포와 이와 엮여 있는 ‘명가’의 저택과 하인들이 분주하게 움직인다. 마법사이지만 인간인 마리사는 오랜만에 히에다 가문의 저택에 직접 방문했다. 커다란 저택의 대문을 두드리자 마중 나온 인물은 의외로 모토오리 코스즈, 이 근처에 있는 영나암(스즈나안)이라는 대본소의 꼬마 점주였다.  “아, 어서와, 마리사. 도와주러 와서 고마워.” “별 말씀을. 근데 왜 네가 마중을 나오는 거야? 히에다 가의 하인들은 다 .. 2024. 9. 7.
3월 : 다진 닭고기와 매실 마제고항 3월 : 다진 닭고기와 매실 마제고항  눈이 점점 녹아내리는 계절이었다. 듬성듬성 나무와 지붕 위에 눈이 쌓인 것이 보이지만 눈은 점점 사라지고 들판은 새하얀 눈 대신 녹색 풀과 갈색 흙이 자리잡고 있었다. 흑백의 마법사 키리사메 마리사는 미니 팔괘로 개조를 위한 도움을 얻기 위해 향림당으로 향했다. 마리사는 자신의 ‘마법상점’처럼 복잡한 향림당의 문을 곧장 열고 들어갔다.  “코우린! 저번에 이야기한 팔괘로 개조 좀 도와줘!”  “....... 그리고 이걸 누르면 기기 안에 저장된 노래가 재생되는 거야. 요즘이야 다 스마트폰으로 듣지만.”  “그렇군. 고마워, 우사미 군. 이전에도 비슷한 기계를 주웠었는데 이 정도로 작아지다니. 바깥 세계의 과학 기술이란…….”  향림당 안에는 검고 푸른 옷을 입은 반.. 2024. 9. 5.
2월 : 연근 돼지고기말이 2월 : 연근 돼지고기말이  밝은 태양이 사방에 깔린 눈에 반사되자 온 세상이 은빛이었다. 하지만 그 은빛은 흑백의 마법사의 얼굴을 따갑게 쬐고 있었다. 그래도 추위는 많이 누그러져서 스타킹 없이 치마를 입어도 상관 없을 정도였다. 키리사메 마리사는 마법의 숲 중에서 유독 큰 나무의 윗부분을 향하여 미니 팔괘로를 조준하였다.  “흐읍……. 연부,「마스터 스파크 프로즌」!!”  팔괘로에서 평소의 뜨거운 빛 대신 소용돌이치는 차가운 바람이 발사되자, 마리사가 노리고 있던 나무의 이파리는 마치 유리가 된 것 마냥 얼음 결정 형태로 얼어붙었다. 그 강렬한 위력에 비해 마리사는 불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이번에도 바로 불 마법은 안 써지네. 자잘한 냉기 마법이랑 불 마법이랑 전환하는 건 잘 되는데 꼭 마스터.. 2024. 8. 31.
1월 : 송어와 양배추 구이 1월 : 송어와 양배추 구이  차가운 바람이 나무 사이를 날카롭게 가른다. 숲 속에서는 바구니를 팔에 끼고 있는 한 마녀가 나타났다. 얼핏 봐서는 메이드복과 비슷한 검고 흰 옷은 평소보다 두텁고 무거운 느낌이다. 두껍고 긴 소매는 다른 부위와 달리 얇고 잘 늘어나는 장갑과 이어져 있고, 검은 타이즈 스타킹은 평소의 마녀 모습을 생각하면 상당히 낯설다. 오로지 분홍빛 목도리만이 그의 평소 모습과 어울리는 정도다.  “진짜, 지독한 한파로군. 이럴 줄 알았으면 좀 이르더라도 약초랑 버섯은 채집해둘 걸 그랬어.”  키리사메 마리사, 흑백의 마법사는 약초와 버섯이 들어 있는 바구니를 보자기로 잘 싸매고 마법 지팡이를 타고 날기 시작했다. 공중으로 날아오르자 마리사의 뒤편에는 커다란 산이 보였고 반대편에는 숲과 .. 2024. 8.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