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공방과 텐구 공장, 텐구 은행, 요괴 상가에 대해

 당신이 인간 마을에서 어떤 일과를 보내며 살게 될지 알게 되었으니, 이제는 인간 마을에서 가장 중요한 공방과 인간과 요괴가 서로 크게 의존하게 해주는 텐구 공장, 요괴 상가에 대해 알아보겠다. 큰 맥락의 역사는 뒤에서 이야기하겠지만, 본래 환상향에서도 인간과 요괴는 사냥감과 포식자의 관계였다.(이 주장에 대해 여러가지 갑론을박이 있지만 당장은 넘어가자.) 하지만 시간이 흘러 이성과 논리, 체계화가 기피되는 환상향 내에서도 텐구 사회 조직이 정착 및 확장하면서 텐구 공장 등 유사근대적인 기술 체계가 도입되었다. 그 결과 환상향 사회 전체의 노동력의 수요가 증가하였고, 이를 메꾸기 위해 인간 마을은 농업 관련 1차 생산, 전근대적 2차 생산을 담당하게 되었다. 이 때문에 제 아무리 식인 요괴여도 인간 마을 주민은 갓 환상들이한 외래인이어도 함부로 손을 대지 않으며, 많은 요괴들이 인간에게서부터는 공포심과 경외심만 뜯어내는 방식으로 관계가 변화했다.

 

 긴 서론을 너머 이제 다시 당신이 가입하고 일하게 될 공방에 대해 이야기하자. 우선 하루종일 마을의 농장에서 일해도 되니 공방에 가입할 의무는 없다. 다만 공방의 일원으로서 요괴 조합과 직접 교섭할 권한, 공방 생산품의 교역에 대한 의결권 등 여러 방면에서 당신에게 의무와 더불어 권한도 주어진다. 그리고 냉정하게 말해 바깥 사회로 치자면 젊은 성인이 인간 마을에 있으면서 공방에 가입하지 않는다는 건 무직 상태로 있는 것과 가까운 것이기에 특별히 전문 퇴마사 시험을 준비한다거나 텐구/갓파 연구소로 간다거나 소속 공방을 이전한다거나 무언가 준비하는 것이 아니면 그리 모양새가 좋아보이지는 않는다. 때문에 가능하면 설령 공방의 일이 그리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우선 공방에 가입하여 일을 하면서 앞으로 무엇을 어찌할지 생각하는 게 나을 것이다.

 

 공방은 보통 생산품별로 분류되며, 그 수는 소마을마다 제각각인데, 크게 분류하자면 대장기술, 재봉술, 목공기술, 가죽세공, 도자기공예, 석재공예, 그 외 기타 제조업 정도가 있다. 마을에 물론 약방, 서점, 도서관, 서당, 병원,공동 식당과 같은 곳도 있긴 하지만 이는 공방 차원이 아닌 소마을 주민 전체가 공동 운영(서당, 공동 식당, 식품 가공, 집단 가사노동 등)하거나 전문가로 등록된 자들만이 운영(약방, 서점, 도서관, 병원 등)한다. 보통 갓 환상들이한 외래인은 아직 마을 차원에서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르기에 공방에서 일하기를 권장하며, 심지어 공식 의사여도 병원에 바로 일을 할 수 있도록 하지 않는다. 아무튼 소마을에 있는 공방들을 둘러보면서 마음에 드는 공방에 가입하면 정식 일원으로서 기술을 전수받게 된다.

 

 공방 일원으로서 기술을 잘 습득하고 성실하게 일하면 공방 내에서 의사결정권이 생긴다. 다소 거창하게 말해서 의사결정권이지, 요약하자면 공방에서 무엇을 얼만큼 만들고 어디에 어떻게 분배/납품/판매할지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이다. 보통 토요일 오전에 간단한 공동 농장 작업 대신 공방에서 다음 주 생산하고 분배할 계획을 세운다. 이때 같은 물품을 생산하는 공방이 있으면 같이 모여서 회의를 하기도 한다.(이는 의도적으로 독과점을 하는 것이긴 하나, 실제로 이것으로 마을에 피해가 가는 방식으로 이득을 취하려고 했다가는 식량 배급 중단으로 굶어 죽는 것은 물론, 재수 없으면 단체로 마을에서 추방당하여 요괴들의 별미가 될 수도 있다.) 이렇게 공방 내에서 결정한 회의 내용은 오후의 소마을 총회의, 인간 마을 총회의에 전달되어 수정 및 최종 결정이 이루어진다. 결정된 내용대로 인간 마을 내에서 분배가 먼저 이루어진 후, 다음 주 월요일에 텐구 공장, 갓파 연구소, 요괴 상가 등에 납품되며(보통 요괴 측에서 가지러 온다.) 남은 생산물은 저장해두거나 다른 경로로 판매를 한다.

 

 주된 납품처인 텐구 공장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환상향에서 보급되고 있는 대부분 기계는 텐구 공장에서 생산된다. 물론 기술의 최첨단에 대해 이야기하라 하면 갓파들이 최고라 하지만 실제로 인간 마을의 주민은 물론 요괴 사회의 텐구나 여느 요괴들이 누리는 기술의 혜택은 텐구 공장에서 만들어졌다. 여기서 ‘기계’는 환상향 기준에서 기계인데 전기와 컴퓨터에 익숙한 외래인이 보기에는 기계와 주술과 마법이 뒤섞인 정체불명의 무언가로 보일 것이다. (실제 제품에 대해서는 나중에 이야기하고) 공장 역시 바깥 세계에서 생각하는 컨베이어 벨트를 동원한 생산 라인과는 많이 다르고, 근대 초기의 재봉 공장과 비슷한 형태이다. 공장 노동자에게는 제품 생산 매뉴얼과 필요 도구(기본적인 공구는 물론 식(式) 각인서와 같은 주술/마법물품까지 포함된다.)가 현장에 지급되고 노동자를 이를 활용하여 생산 일정에 맞춰 끊임 없이 제작한다. 이러한 공장 생산에 필요한 자원은 요괴의 산 광산, 마법의 숲에 사는 마법사들, 인간 마을의 공방과 농장 등에서 공급받는다.

 

 이렇게 자원을 공급받는 텐구 공장은 납품처에 1. 자기 공장의 생산품 분배를 계약하거나 2. 텐구 은행에서 발행하는 화폐로 값을 지불한다. 여기서 텐구 은행이라 하면 흔한 바깥 세계의 은행을 생각할 수도 있지만, 실제로는 텐구들의 수장인 텐마가 직접 관리하는 화폐 발급 공장 및 경제부서라 보는 것이 더 맞다. 텐구 은행 화폐는 두 가지로 나뉘는데, 하나는 금, 은, 철 등 실제 금속 가치를 기반으로 한 전통 동전 화폐, 다른 하나는 (환상향 기준)최신 인쇄술을 활용한 신식 지폐가 있다. 전자는 화폐로서의 가치 보존이고 뭐고 급하다 싶으면 녹여서 다시 제련해서 쓰면 되기에(인간 마을의 경우 애초에 이것이 주 목적이다.) 텐구 사회는 물론 환상향 각 지역에서 널리 통용된다. 그에 비해 후자는 텐마가 계속하여 실험하는 것이지만, 아직까지는 위조 가능성, 역으로 정품 식별의 어려움 때문에 텐구 사회에서나 가끔씩 쓰인다. 몇몇 텐구들 사이에서는 환상향에 지폐가 통용되는 순간, 텐마와 텐구 사회가 환상향의 실지배자가 되리라 믿기도 한다.

 

 하지만 비록 지폐는 실제로 사용되기까지 한참이나 멀었지만 텐구 은행이 안정적으로 동전 화폐를 관리함에 따라 환상향 사회에서 시장이 활성화되었고 그 결과물이 바로 인간 마을, 혹은 하쿠레이 신사에 인접하여 열리는 요괴 상가이다. 이전에는 요괴들이 인간 마을의 상가에 숨어들어서 상거래를 해왔었는데 근래에는 아예 요괴들이 개최하는 상가가 들어선 것이다. 다만, 이 원인이 단순히 시장의 활성화 때문이라 볼 수는 없는 게, 인간 마을에서 점점 상가의 수를 줄이고 공공 재화의 비중을 늘리고 있는 것도 영향이 있다고 본다. 아무튼 요괴 상가에서는 이름대로 주로 요괴들이 자신들의 돈벌이를 위해 직접 만든 상품을 파는데 여기에는 텐구 공장의 상품도 포함된다. 인간 마을 주민들은 보통 요괴 상가에서 소비만 할 뿐, 재화를 팔지 않는데 이는 나름 요괴의 영역을 배려하는 것도 있다.

 

 요괴 개인이 인간에게 무언가를 사고 싶어할 경우 인간 상가에 들리거나 요괴의 영역에 잠깐 나오는 전담 상인에게서 구매한다. 물론 요괴 입장에서는 대량 구매할 게 아니면 돈 주고 사느니 탄막놀이, 내기 게임하기, 장난치기 등으로 물건을 강탈하는 것이 더 재밌긴 하다. (대량으로 강탈하면 하쿠레이의 무녀 및 퇴마사 등을 통해 크게 보복하려 들기에 보통은 그러지 않는다.) 실제로 요괴 상가에서 소량으로만 팔리는 상당 수의 물건은 인간 마을에서 강탈한 것을 재가공해서 파는 것이거나 심지어 아무 가공 없이 그대로 파는 경우도 있다.

 

<추가본 1>

 많은 요괴들이 비정규적이고 근래에 생긴 요괴 상가보다 갓파의 바자(Bazaar)나 지저에 있다는 오니 시장을 많이 쓴다고도 하는데 인간, 특히 갓 정착한 외래인 입장에서는 큰 도움이 안되는 정보이긴 하다. 우선 오니 시장은 매우 험난한 지저의 옛 지옥이라는 곳에 있기에 강한 요괴나 신 등이 동반하는 특별한 경우가 아닌 이상 인간이 가는 경우가 거의 없다. 그리고 갓파의 바자는 접근성이 생각보다 좋은 편이지만 바깥 세계 기준으로도 고차원의 과학(?) 기계 상품을 팔기에 인간 개인이 가서 사고 말고를 결정할 일이 없다. 갓파와의 주된 거래는 어디까지나 소마을/마을 단위로 직접 교역하는 것이 보통이다. 다만, 오니 시장이나 갓파의 바자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환상향 전체의 물가에 영향을 주기도 하니 정보를 얻을 수 있다면 참고하는 것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