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알파] 환상향견문록/환상향에서 살아남기

3. 인간 마을에서의 일반적인 하루 일과

by 판타스웜 2022. 10. 10.

 이제 어엿한 인간 마을의 일원이 된 당신은 인간 마을에서 하루하루를 어떻게 살아갈지에 대해 알아보자. 우선 인간 마을의 규모와 구성에 대해 간략히 짚어보겠다. 과거의 인간 마을은 말 그대로 작은 인간 마을에서부터 시작했으나 지금은 이제 인간 마을 연합이라 보는 것이 좀 더 맞을 것이다. 그래서 현재는 총 인구가 약 1만명 내외이며 당장은 동서남북 4개의 소마을로 나뉜다. 앞서 우리가 말한 마을회관은 정 중앙에 있는 ‘공동 마을회관’이며 이제는 한 작은 마을의 회관보다는 고대 그리스 도시국가의 아고라처럼 인간 마을 총회의, 인간 마을 공동 식당 등을 주목적으로 쓰인다. 또한 임시적으로 거주처가 없는 주민들이 사용 가능한 임시 거주 공간 역시 제공한다.

 

 그리고 이러한 기능과 더불어 조금 더 세부적인 기능을 가지고 있는 소마을별 회관이 있다. 추가적인 세부기능은 지역과 시대마다 다르며 각 소마을 주민들의 총회의를 통해 결정한다. 다시 인간 마을의 주민이 된 당신의 미래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우선 임시방편으로 한 소마을에 배정이 되어 그 소마을회관에서 거주하면서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이 일과는 어지간해서는 다른 소마을로 이적해도 큰 차이가 없으며 인간 마을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잘 알 수 있게 해준다.

 

 우선 바깥 세계의 농촌과 유사하게 통상적인 기상 시간은 새벽닭이 울 때, 즉 약 오전 4~5시이다. 이때부터 각자의 집안 및 마당 정리를 어느 정도 한 후 공동 농장에서 작업을 시작한다. 당연히 매 계절, 시기마다 작업 내용은 다르며 각 소마을의 공동 농장에서 수확하는 작물도 제각각이다. 보통은 오전 11시에 일이 끝나며, 소마을마다 다르지만 그 사이에 아침 식사 시간과 휴식 시간이 1~2시간 정도 있다. 온 소마을 주민이 다 참여하는 공동 농장 작업은 이렇게 끝이 나고 오후 2시까지 점심 식사 및 휴식 시간을 보낸다. 이렇게 일찍 일어나고 낮에 길게 쉬는 이유 중 하나는 여름의 무더위를 최대한 피하기 위한 것이다.

 

 이쯤되면 알아차리겠지만 인간 마을에는 사적재산이 없으며 생필품, 의복 등의 소모품만이 개인이 소유할 수 있다. 집, 공방 도구 등 부동산과 생산수단은 모두 마을의 공동재산이며 개인이 빌릴 뿐이다. 때문에 앞서 이야기한 아침 식사 및 점심 식사, 원할  경우 저녁 식사까지 마을에 축적해둔 식량을 먹고 싶은 만큼 먹을 수 있다. 하지만 반대로 개인 식량 비축 등은 금지고, 집에 가져갈 수 있는 식량도 야식 정도만 가능하며 어떤 소마을에서는 이마저도 금지된다(보통 이러면 대신 야간에 공동 식당을 개방해둔다.). 의복을 만들기 위한 천 등 원재료 역시도 공동재산으로 관리되며 의복 및 물품 제작을 위해 청구하면 필요한 만큼 분배받고 제작사에게 의뢰할 수 있다.

 

 얼핏 보면 허점이 많아보이는데 이런 허점을 이용해서 개인적인 부를 축적하려고 하면 마을 총회의에서 추방할 것을 결정할 수도 있다. 실제로 갓 들어온 외래인을 상대로 종종 있는 일이며, 이렇게 추방될 경우 인간 마을의 보호를 전혀 못 받기 때문에 대개 며칠 안 지나 요괴의 먹잇감이 되어 있다. 물론 드물게 홍마관, 텐구 사회 등에 종이나 신부/신랑으로 편입하여 요괴의 보호를 받거나 진짜 자신이 능력이 있으면 마법, 주술 등을 사용하여 독자 생존할 수도 있다. 다만 후자의 경우 인간 마을 시설은 여전히 못 쓰며 본격적으로 하쿠레이의 무녀가 간헐적이지만 꽤 꾸준히 감시한다.

 

 다시 오후 일과로 돌아와서 이야기하자면, 오후 2시부터 6시까지는 자신이 희망하거나 적성이 있는 공방 일을 하게 된다. 텐구의 공장이나 갓파의 정비소와 달리 인간 마을의 공방에서는 대장기술, 재봉술, 가죽세공, 도자기공예, 석공 등 밖에 없기에 자신이 컴퓨터공학 전공이거나 그러면 딱히 특기를 살릴 게 없지만, 종종 자신의 취미나 본업이 이에 부합하여 대우를 받으면서 해당 기술의 전문가가 될 수도 있다. 공방에서는 기본적으로 소마을에 필요한 것만 만들지만, 이전에 미리 다른 소마을에 필요하다고 합의된 것들을 제작하기도 한다. 그 외에도 주기적으로 텐구 사회의 시장에 납품할 물품을 제작하여 배송하기도 한다. 텐구 사회에 납품한 물품은 요괴들 사이에서 통용되는 전용 동전 화폐로 환전되며, 이는 마을 공동 소유가 되어 후에 요괴들과 거래할 때 사용된다. 참고로 오후 시간에도 별도로 공방에 일하지 않고 공동 농장에서 일을 하는 경우가 많으며, 농산물도 공예품과 비슷한 취급을 받는다.

 

 오후 일과가 끝나면 저녁부터 밤 12시까지 대부분 자유 시간으로 보낸다. 각 소마을은 물론 공방마다 문화가 다른데 소박하게 공동 식당에서 식사를 하기도 하지만 요괴가 운영하는 상가에서 앞서 이야기한 동전 화폐로 음식을 먹고 상품을 사며 사치를 부리기도 한다. 소마을마다 매주, 매일 개인이 사적으로 사용 가능한 동전 화폐의 양이 다른데 화폐 자체가 소마을이 아닌 마을 전체의 공동 재산이라 총량은 얼추 비슷하다. 참고로 요괴 상가에서 판매하는 상품들은 대개 개인이 부를 축적하기 어려운 상품들이며, 공적 인프라 같은 경우는 해당 요괴 업체와 인간 마을 전체 차원에서 거래한다. 환상향 성질상 밤 12시가 지나면 인간 마을에서도 급격히 활동하는 인간 수가 줄어드는데 아무리 퇴마사와 무녀 등이 치안을 유지하려 해도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주말에는 오전 공동 농장에서 최소한의 관리를 하는 일 빼고는 일을 하지 않는데, 토요일 오후에는 소마을 총회의와 인간 마을 총회의가 있다. 소마을 회의에서 진행자는 돌아가면서 맡으며, 인간마을 총회의에서는 각 소마을의 촌장(보통 가장 연장자이거나 투표로 선출한다.)들이 돌아가며 맡는다. 이전에 회의하기로 한 주제와 평일에 추가 건의된 회의 주제를 모아서 진행한다. 의사 결정은 기본적으로 참석자가 (소)마을의 구성원 절반 이상이며 전원 동의했을 때이지만 다소 사소하거나 빨리 결정해야 하며 취소 및 재결정이 가능한 주제에 대해서는 참석자의 7할이 동의하면 결정 처리를 하고 이후 이의 제기를 받는다.

 

 인간 마을에서 자치적으로 치안 유지 활동이 이루어지는데 크게 대요괴 치안과 대인 치안으로 나뉜다. 전자는 퇴마사 협회에서 전문가들이 전담으로 순번을 돌아가면서 순찰 임무 등을 수행한다. 퇴마사들도 마을 주민으로서 공동 농장 작업을 어느 정도 하지만 이런 전담 임무 때문에 어느 정도 열외가 적용된다. 후자는 매달마다 마을 주민 내에서 자경단이 정해지는데 이 중에서 1/4은 퇴마사, 외래인 중 전투 경험자 등 긴급 상황 때 대인 전투가 가능한 인원으로 할당한다. 인간 마을 성질상 보통 어지간해서는 폭력적인 범죄는 잘 안 일어나지만 이변으로 인해 소수 인간이 폭력적으로 변하는 경우도 있어서 생각보다 대처가 필요한 분야이다. 하지만 보통 자경단의 주요 업무는 횡령, 밀수 등 경제적 범죄 대처와 분쟁 중재가 대부분이다.

 

<추가본 1>

 갓 들어온 외래인에게는 큰 상관이 없을 수 있지만, 중앙 지역에 위치한 공동 시설에 대해 간단히 짚고 가겠다. 중앙 지역에는 각 소마을에서 작게 운영하는 인간 상가의 상점들과 인간 마을 공용 시설, 그리고 히에다 가문 외 소수 명문가의 저택 등 소마을의 영역 밖에 있는 시설 및 장소가 있다. 가장 직관적인 인간 상가에 대해 알아보자면 본래 해당 건축물들은 소마을간, 혹은 인간 마을 개개인이 급하게 물자가 필요할 경우 수급하기 위한 창고였는데 점점 요괴 측 거래자가 늘어서 시장화된 곳이다. 현재는 소마을에서 주로 당번제로 소수가 운영하는데 종종 요괴가 인간으로 위장해서 숨어들어 상점을 열기도 한다. 각 소마을은 요괴의 이런 잠입에 대해 대부분 용인하지만 유독 마법사의 상점 개점에 대해서는 배타적인 경우가 많다. (해당 건은 환상향과 인간 마을의 야사와도 관련이 있는데 이는 별도 책에서 다루겠다.)

 

 비록 인간 마을이 공방 중심의 공동체여도 웃어른 대우를 받는 히에다 가문 등 소수 명문가가 존재하긴 한다. 이들은 주로 문학, 음악, 예술 등의 영역에 종사하는데 이는 환상향에서의 많은 지식이 논리적으로 정돈된 서적보다는 시, 노래, 그림 등 문화 물품 형태로 전승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런 일명 예술인 가문은 실제로 탈인간적인 면모도 있고 다른 누구보다도 환상향에 대한 지식이 풍만하기에 웃어른 대우를 여전히 받는다. 다만 그렇다고 이들이 총회의에서 더 특별한 대접을 받는 경우는 없고, 오히려 어느 소마을에도 속하지 않아서 어정쩡한 상황에 놓이는 경우가 더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