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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파] 환상향견문록/환상향에서 살아남기

2. 인간 마을의 주민 되기

by 판타스웜 2022. 10. 10.

 전 장에서 인간 마을까지 최대한 무사히 도착하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해봤다. 이제 인간 마을에 도착했으니 공식적으로 인간 마을의 주민이 되는 법에 대해 알아보겠다. 미리 짚고 넘어가지만, 생각보다 환상향에서 인간 마을의 주민이 아닌 채 인간이 살아가는 방법은 좀 있다. 그러나 거진 다 자기가 원한다고 뚝딱 갈 수 있는 곳도 아니고 일단 마을에 주민 등록은 해야 하는 경우가 많으니 마을 주민 등록을 먼저 다루겠다.

 

 먼저 인간 마을에 도착하면 바로 주민 등록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손님으로 대우를 받으며 최대 2일간 쉴 틈을 준다. 다만 심문 준비를 위해 두시간 가량 준비 후 바로 심문을 진행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 경우 당신은 진짜로 예상 못한 손님, 혹은 생존자일 가능성이 높다. 보통 최대 2일을 기다리는 이유는 야쿠모 일가가 파악한 환상들이 인원들이 마을에 도착했을 때 쯤을 계산한 것이다. 그렇다고 당신을 심문일까지 방치하지는 않는데, 마을의 주술회에서 당신이 일본어를 못할 경우 일본어를 할 수 있는 주술을 걸어준다. 잘 못하는 경우도 포함되며, 어지간해서는 일본인이 아닌 이상 걸어준다. 참고로 이 일본어 주술을 걸어준다고 일본어에 능통해지는 것까지는 아니기에(특히 현대어는 습득 못한다.) 따로 단어 및 한자 공부는 해야 한다.

 

 이렇게 손님이 되어 인간 마을에 생활하는 동안에는 마을 회관에서 의식주를 다소 소박한 퀄리티지만 양적으로는 충분히 보장해준다. 문제는 그렇다고 당신이 이틀간 이를 누리면서 쉬는 게 좋겠다 생각하면 잘못 생각한 것이다. 어지간히 마을회관의 임시 독방에 틀어박혀 있는 게 아닌 이상 적지 않은 마을 주민들이 당신을 찾아올 것이며, 여러가지를 물어볼 것이다. 이들이 누구냐면 바로 마을에 있는 각 공방 길드의 조사원들이다. 이들은 당신이 얼마나 자신의 공방 길드에 가치가 있을 만한 인물인지 파악하기 위해 왔다. 만약 당신을 영입할 가치가 딱히 없어 보이면 그냥 적당히 이야기나 하고 가겠지만 반대로 가치가 있다고 판단하면 심문에서 어떤 것을 물어보는지 얼추 알려줄 것이다. 물론 그들도 야쿠모 일가 등 환상향 관리 및 요괴 측에서 어떤 것을 질문할지는 잘 모르지만(외래인 출신이면 직접 심문을 경험해 봤으니 자신의 경험담을 공유해줄 수도 있을 것이다.) 마을 주민 대표자가 어떤 것을 물을지는 꽤 구체적으로 알려줄 것이다.

 

 여기서 알아둘 것은 이들이 중요시하는 가치는 생존 능력이나 전투 능력이 아니라 공방 길드답게 생산 관련 기술과 능력이다. 우선 마을의 퇴마교육관의 주장대로면 일단 환상향의 혹독한 야생에서 재주껏 인간 마을까지 도착할 생존 능력을 가지고 있다면 아무리 재능이 없어도 퇴마술 및 체술 훈련을 통해 대요정 정도와는 겨뤄볼 만한 전투 능력을 갖출 수 있기에 전투 능력은 길드 영입에 있어 그리 중요한 가치가 아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결국 길드에서 무엇을 생산하는지에 따라 다시 교육을 해야 한다 쳐도 영입 대상이 관련 기술을 가지고 있으면 더욱 빨리 학습하여 실무가 가능하고 운이 좋으면 바깥 세계의 기술이나 노하우도 길드 차원에서 습득할 수 있다.

 

 여하튼, 환상향에 정착하고 싶다면 딱히 길드의 영입 관심 대상이 되지 않더라도 가능하면 심문일까지 마을 주민들과 좋은 관계를 맺으며 교류를 하는 것이 좋다. 눈치가 좋은 사람이면 알아채겠지만, 바깥 세계에서 온지 얼마 안 된 외래인은 요괴(주로 텐구) 차원에서든 마을 차원에서든 요주 인물이기에 어떤 형태로든 감시를 받게 되며 이 과정에서 가능하면 좋은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좋다. 이후 더 자세히 다룰 것이지만 혹자는 이 과정에서 ‘요괴가 인간을 감시하는 통제 사회 체제’라고 오해하는 경우가 많은데 요괴 사회의 체계성이 기본적으로 이를 소화할 수 없기에 이는 거짓이라 보는 것이 맞다.

 

 심문일이 되면 마을 광장에 천막이 세워지고 바깥 세계에서 온 외래인들이 줄을 서서 천막 안에 들어가서 심문을 받게 된다. 심문자는 환상향을 관리하는 야쿠모 일가의 식신 야쿠모 란, 카미시라사와라 케이네라는 반인반수 서당 선생님, 인간 마을을 대표하는 마을 주민 대표자(보통 각 동네 촌장 중 한명이나 길드 원로가 선정된다.), 그리고 외래인 출신 수사관이 있다. 심문자는 아니지만 기록관으로 텐구 대표(보통 대텐구급)도 심문에 참석하긴 한다. 심문에서는 우선 신원 조회를 위해 아래와 같은 사항을 물어본다.

 

  ⓐ 이름과 나이, 국적

  ⓑ 직업과 사회적 위치

  ⓒ 친족 유무와 친족의 직업 및 사회적 위치

  ⓓ 종교와 신앙의 정도

  ⓔ (보통 근대의)이데올로기의 유무

 

 여기서 ⓐ 이름과 나이, 국적은 단순히 대충 어떤 사람인지 알기 위해 물어보는 정도이지만 ⓑ, ⓒ 직업과 사회적 위치, 친족에 대한 내용은 ‘이 사람이 환상향에 있을 경우 환상향의 노출 위험도가 얼마나 되는가?’를 알기 위한 것이다. 가능하면 이 사람이 바깥 사회에서 사라져도 큰 파동이 없어야 이 사람을 환상향에 받아들여도 발생할 문제가 적어지기 때문이다. 대충 미국의 대통령이 환상들이당했다고 생각해 보면 이것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 상상이 된다. ⓓ, ⓔ 종교와 신앙, 이데올로기에 대한 질문은 환상향의 존재와 얼마나 조화로운지 파악하기 위한 것이다. 보통 힌두교나 일반적인 토속 종교를 믿는다면 별 문제가 없지만 유일신을 믿는 아브라함계 종교를 충실하게 믿는 경우, 간혹은 유교나 불교를 종교보다는 학문으로 수행할 경우 환상향의 존재(주로 신들)와 마찰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판단하여 바로 바깥 세계로 돌려보내도록 결정내릴 수도 있다. 간혹 근대의 이데올로기에 대해 묻기도 하는데 애초에 환상향에 살던 심문관들은 커녕 외래인들도 자세히는 모르는지라 대충 ‘자본주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합니까?’, ‘공산주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합니까?’ 정도를 묻는 것에 그친다. 이 질문에 대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열변하면서 답하면 바로 바깥 세계행이고, 적당히 잘 모른다는 쪽으로 답하면 별 의심 없이 넘어간다. 만약 당신이 힌두교, 토속 종교 등을 충실히 믿는다면 애초에 이데올로기에 대해서도 전혀 안 물어본다. 위와 같은 질문이 끝나면 다음에는 (주로 마을 주민 대표측에서) 아래와 같은 질문을 한다.

 

  ⓐ 왜 환상향에 남고 싶은가? 바깥 세계보다 더 위험한 곳인데 괜찮은가?

  ⓑ 왜 바깥 세계로 돌아가고 싶지 않은가?

  ⓒ 바깥 세계에서 직업상 구체적으로 한 일이 무엇인가?

  ⓓ 인간 마을에서는 무슨 일을 하고 싶은가?

 

 ⓐ, ⓑ 질문은 이 사람이 과연 막상 환상향에 살게 되니까 바깥 세계에 돌아가고 싶어서 탈주를 하는 등 문제를 일으키지 않을까 확인하고자 하는 것이다. 실제로 이런 문제로 억지로 환상향에서 나가겠다고 제멋대로 마을에서 도망쳐 개죽음을 당하는 경우도 많고, 최악의 경우 환상향을 나가겠다고 비인간적인 힘을 추구하는 끝에 요괴화가 되는 경우도 있다. 이 같은 경우 하쿠레이의 무녀가 ‘환상향의 인간이 요괴화되면 죽여서 없애야 한다’는 규칙대로 영원히 멸해버리는데 이 규칙의 기원와 본질, 기준 등에 대해 여러 논란이 있기에 이에 대해서는 후에 더 자세히 다루겠다. ⓒ, ⓓ 질문은 이 사람이 인간 마을에 합류하면 무슨 일을  시켜야 하는지 알기 위한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환상향의 인간 마을은 바깥 세계의 냉혹한 기업체 마냥 ‘불필요한 인재면 고용 안한다’ 같은 판단은 안 내리며, 어떻게든 그나마 가장 알맞는 일을 마련해준다. 이 질문은 텐구 측에서도 관심사이긴 한데, 텐구 공장 운영 및 개발 등에 필요한 인재라 여겨지면 텐구 측에서 스카웃을 하려 할 수도 있다. 이 과정을 모두 마쳐 인간 마을에 합류하기에 괜찮은 사람이라고 판단이 되면 정식으로 인간 마을 주민이 되며 마을 주민으로서의 여러 의무와 혜택을 누리게 된다.

 

 이렇게만 서술하면 인간 마을에 정착할 수 있냐, 아니면 바깥 세계로 쫓겨나냐, 두가지 결말만 있는 것 같지만 요괴의 먹잇감이 되는 결말도 있긴 하다. 가장 이해하기 쉬운 경우는 바깥 세계의 기관에 속한 첩자인 것이 드러날 경우이다. 다만 이는 아직 발생한 적이 없고 이론상 규정한 것이긴 하다. 다른 경우는 해당 인간이 너무나도 천인공노할 인간말종이라 바깥 세계에 돌려보내기도 아깝다고 판단되는 경우이다. 우선 환상향 토착민도 어느 정도 공감 능력이 당연히 있기도 하고, 무엇보다 외래인의 상당수가 아직은 바깥 세계에 먼 가족이나 친구라도 있는 경우가 많고, 그렇지 않아도 저런 인간말종한테 데이며 인생을 살다 환상향까지 흘러들어온 것일 수도 있다. 이 경우, 심문 과정에서는 마을 주민으로 받아주지만 며칠 안 가서 야밤에 습격하여 포박한 후 요괴에게 제물로 바쳐버린다.

 

<추가본 1>

 종종 코메이지 사토리라는 마음 읽는 요괴에 대해 이야기를 듣게 된 사람들이 그 요괴의 능력을 쓰면 더 편히 심문할 수 있지 않냐는 질문을 한다. 하지만 지령전과 그 아래 있는 작열지옥터를 관리하는 그녀는 같은 요괴는 우호적이면서도 인간에게 전혀 우호적이지 않기에 신용할 수 없다고 마을 원로들이 말한다. 오히려 인간들을 골탕먹이겠다고 (인간 한정으로) 위험한 인간들을 인간 마을에 들여도 괜찮다고 우리를 속일 수도 있다고 본다.